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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2 16:21

  • 오피니언 > 윤만보 작가 이방실 장군이야기

이방실 장군 이야기11

기사입력 2025-12-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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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보 작가
전 경찰서장(총경)


공민왕을 고려왕으로 즉위하고서 조일신에게 일등 공신의 작호와 함께 찬성사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조일신은 공민왕이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자신에게 모든 권한을 맡긴 것으로 착각하여서인지 벼슬에 앉자마자 자신의 인사들로 조정을 채우고 전권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부원배의 대표적 인사 기철과 마찰을 빗었는데 그는 왕의 승인도 없이 제마음 대로 기철의 집을 습격하여 기철을 죽이려고 한 일을 벌였다. 그러나 기철이 이를 눈치채고 피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는데,

기철이 누구인가? 그는 원나라 황제의 후궁으로 있는 그 누이의 뒷배를 믿고 고려 조정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자가 아닌가?

 

공민왕은 뒷일이 걱정되었다.

기철이 누이의 힘을 빌어 원나라 황제의 힘을 동원한다면 공민왕은 꼼짝없이 고려왕의 자리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이에 공민왕은 난처한 곤경을 면하기 위하여 조일신을 제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조일신이 먼저 난을 일으켜서 선수를 쳤다. 왕을 궁에 가두고서 스스로 우승상이 되어서 마음대로 조정의 일을 주무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영 등 공민왕의 충성파들이 나서서 조일신을 살해하여 난을 진압하였고 공민왕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용도 조일신 못지않게 왕의 총애를 업고 전횡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두차례에 걸쳐서 유배형을 받았다가 사면을 받고 벼슬에 복귀한 인물이었다. 그는 조일신이 난을 일으켰을 때 궁중 숙직을 하였음에도 왕이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한 일로 장형을 맞고 유배를 갔고 그 뒤 벼슬에 복귀하여서도 자신과 감정이 좋지 못한 자를 모함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일로 그는 두 번에 걸쳐서 유배를 갔다가 공민왕의 용서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왕의 총애를 믿고 여러 횡포를 그치지 않았다.

 

공민왕은 그러한 자에게 홍건적과 전쟁 중인 고려군의 최고사령관 직을 맡긴 것이니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처한 군이었는데 군령이 제대로 먹혀들리가 없었다. 김용의 횡포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서 누구라도 김용의 말만 나오면 그를 간신배라고 뒤에서 욕을 해댔다.

 

공민왕이 피난 떠난 개경은 홍건적에게 힘도 써보지 못하고 함락이 되었다.

이방실이 싸우던 절령이 무너지니 개경까지는 거치는 데가 없었다. 김용은 홍건적이 개경에 도달하는 동안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다.

 

왕은 복주(안동)에 도착하여서 행재소(임시 궁궐을 차려서 사무를 보는 곳)를 차렸다.

어사대에서 올리는 보고를 받아보니 참상이 말이 아니었다

홍건적은 개경에 머물면서 만월대를 불태우고 부녀자들을 붙잡아 강간을 하는 등 그 패악이 극에 달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임신한 여인을 붙잡아다 젖가슴을 도려내어 구워서 술안주를 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한시바삐 적도에게 빼앗긴 개경을 탈환해야하는데 대책이 없었다.

어찌하면 좋은가? 왕은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총병관 김용을 불러서 대책을 물었다. 김용은 뾰족한 대책은 없이 적군의 동향만 보고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간간이 희망적인 내용도 있었다. 비록 고려군의 주군은 패하여 흩어졌지만 각기 장수들이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서 산발적으로 전투를 벌여 전과를 올리고 있다는 보고도 함께 올라왔다.

중랑장(현재 군대 계급상 중령 정도에 해당하는 계급) 김장수가 군사를 모아서 적도 140명을 죽였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러한 전과를 올리게 된 것은 최영기라는 고을 사람이 백성을 모아서 군사들에 협력하여 올린 결과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서 김장수를 상장군(소장 정도에 해당 계급)으로 진급을 시키고 만호의 직책을 주었다. 또 백성 최영기를 서해도 안무사로 임명하였다. 안변부와 강화부에서는 적도들이 쳐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이 거짓으로 항복하는 체하면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서 적을 안심시켜놓고서 그 틈을 이용하여 매복해있는 군사에 연락 적을 몰살 시켰다는 보고도 올라왔다.

, 이 어려운 때에 백성들이 이렇게 나라를 돕는구나!’

공민왕은 보고를 받으면서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이 났다.

 

개경이 함락되고 왕이 복주로 피난하였다 하니 적국에서 백성들이 궐기를 하였다. 지방 관아의 방어사, 원수들이 이들을 모아서 왕이 있는 곳으로 속속 도착하였는데 그 인원이 20만이나 되었다.

왕은 이들의 애국심이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이었다.

평소에는 나라에서 하는 일에 불만이 많은 백성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니 이들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것이 아닌가...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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