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沼)는 담소(藫沼)의 줄임말로 담소는 작은 연못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곰소는 전설적 담소로서 곰이 빠져 죽는 담소인데 곰소(熊沼웅소)로 부르고 있지요.
금강산 골짜기 깊은 계곡에 ‘곰소’라고 불리 우는 담소가 있어요. 그 담소에는 어느 청년의 아람다운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바위로 둘러싸인 담소에는 곰이 자주 빠져 죽는다고 하여 곰소(熊沼)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은 일없이 종종 곰소가 있는 금강산 골짜기에 올라가 곰소를 둘러보곤 했어요. 혹시라도 곰이 곰소에 빠져 죽어 있으면 그 곰을 건져내어 마을로 끌고 와서 큰 솥에 넣어 삶아 마을 사람들이 곰 고기 잔치를 하게 되지요.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른들이 나서서 이런 곰 고기 잔치를 종종 하며 마을 사람들이 축제처럼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놀았어요. 곰을 잡을 적에 잔인하게 창으로 찌르거나 활을 쏘는 것 아니라 스스로 물에 빠져 죽은 곰을 건져 와서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하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횡재였어요.
마을 사람들은 곰 고기 잔치를 하는 날에는 어른, 아이, 남자, 여자가 구분 없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했어요.
곰 잔치가 벌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중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나서서 말했어요.
“우리 이러지 말고 곰을 잡는 덫을 놓아 곰을 자주 잡아먹으면 어떨까?”
그때, 마을에서 착하고 똑똑하기로 소문난 청년 초동이가 일어서서 뽀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어르신, 아니 됩니다. 곰이 얼마나 순하고 착한 동물입니까? 곰은 사람을 해치지도 않고, 농작물도 해치지 않습니다. 얼마나 순한 동물인데요.”
청년이 너무도 진지하게 말을 하자, 마을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청년의 말이 맞다고 했어요.
“초동이 말이 맞아. 그 순한 곰을 덫을 놓아 잡는다는 것은 잘못이야.”
“우리가 산에 나무하러 가도 곰은 절대로 우리를 해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초동이 말에 동조를 했어요.
초동이가 마을 사람들이 곰에 대한 좋은 말을 하자, 초동이가 힘을 얻었어요. 초동이 자신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옳다는 말을 하자,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일부터 곰소에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왜 곰이 곰소에 빠져 죽는지 살펴보아야겠다.”
다음 날, 아침나절이 되었어요.
초동이가 곰소가 있는 골짜기에 곰처럼 생긴 넓은 바위 위에 앉아 곰소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어요.
“왜 곰들이 곰소에 빠져 죽을까? 마을 어른들이 그 빠져 죽은 곰을 건져내어 삶아 먹는 것이 너무 불쌍해.”
초동이는 천천히 일어나 곰소 위의 바위 산 근처를 살펴보기로 했어요.
“왜 곰이 물에 빠져 죽을까?”
곰소 위의 바위산은 경사가 너무도 급했어요.
“곰소 위의 산이 이렇게 경사가 급하니 곰들이 걸어 다니다가 급해서 발을 잘 못 옮기면 저 아래 곰소로 굴러떨어지겠구나.”
초동이가 곰소 위의 바위산을 둘러보다가 큰 것을 찾았어요.
“곰소 위의 나무들이 모두 참나무들이구나.”
초동이가 곰소 위의 참나무를 하나, 둘 보고 있을 적에 곰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아주 큰 참나무 아래로 걸어오더니 참나무를 올려다보고 굴밤이 많이 달린 것을 확인하고는 참나무를 힘차게 흔들기 시작했어요.
참나무에서 잘 익은 굴밤들이 우두둑, 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 도토리들은 곰소를 향해 굴러 내리는 것도 있었어요. 곰은 그 굴밤 중에서 굵고 잘 익은 굴밤들을 주워서 깨물어 맛있게 먹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참나무에서 도토리가 소나기처럼 땅 위에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다람쥐가 수도 없이 나타나 잘 익은 도토리를 물고 가기 바빴어요.
곰이 이를 지켜보다가 황급히 달려가서 다람쥐를 쫓기 시작했어요. 다람쥐와 곰이 숨바꼭질을 하듯이 바위 언덕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어요.
다람쥐들은 그럴수록 요리조리 피하면서 작 익은 도토리만을 골라 물어가기 시작했어요.
곰은 이런 다람쥐를 쫓느라고 곰소 위의 비탈진 언덕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다람쥐를 쫓았어요.
곰은 다람쥐를 쫓느라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그 큰 몸이 담소 위의 비탈진 언덕에서 울퉁불퉁한 돌에 걸려 빙그르르 돌다가 그만 곰소를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곰은 그의 무거운 몸을 이기지 못해 비탈을 굴러 내려가면서 바위에 부딪혀 상처가 나고 아픈 신음 소리를 내다 곰소에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곰소에 빠진 곰은 숨을 가쁘게 쉬다가 이내 힘이 빠져 둥둥 떠서 발만 허우적거렸어요. 곰의 주위에 곰이 흘린 피로 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어요.
초동은 이를 지켜보다가 서투른 수영 솜씨로 곰이 허우적이는 곰소 안으로 첨벙거리며 들어갔어요.
“곰이 무거운데 어떻게 하지?”
초등은 숨을 헉헉거리며 곰의 등을 잡아끌고 곰소 밖으로 끌어내었어요.
곰은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씩씩거리고 있을 뿐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했어요. 네 다리도 이미 힘이 빠져 온몸이 축 늘어져서 달아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초동이는 곰의 몸,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그 높은 바위 언덕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목,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초동이는 곰의 상처를 보자 마음이 아팠어요. 말 못 하는 짐승이 아픈 상처를 이기지 못해 숨만 간간이 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어요.
초동이는 곰을 응급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옛날에 할아버지가 내 무릎에 상처가 난 것을 보고 보리밥을 돌에 콩콩 찧어 상처에 발라주었지.”
초동이는 오늘 산에 오면서 점심밥 도시락을 싸 온 것이 생각났어요. 그는 즉시 그 밥을 내어 돌에다 콩콩 찧기 시작했어요.
초동이가 찧은 밥을 곰의 상처에 정성스럽게 발라 주기 시작했어요. 등이며 발이며 배에 피가 흐르는 곳마다 빠지지 않고 발라주었어요. 초동이가 곰의 상처에 찧은 밥을 바를 적마다 곰은 자신의 상처 난 몸이 아픈지 몸을 비틀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어요.
초동이가 곰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곰의 아픈 부분을 살핀 지 어느덧 한나절이 지났어요. 곰이 제법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어요. 초동이가 그런 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자, 곰은 거친 숨을 식식거리고 어슬렁거리며 담소의 둑길을 천천히 걸었어요.
초동이는 뒤뚱거리며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곰의 뒷모습을 보자, 온몸에 힘이 솟아올랐어요.
“곰아, 잘 가.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지금쯤.....”
초동이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어요. 자신이 아니었으면 곰은 어쩌면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가 축제의 제물이 되었을 것인데, 산으로 돌아가는 곰의 뒷모습을 보자 너무도 기뻤어요.
곰이 보지 않을 때까지 초동이는 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행여나 곰이 뒤돌아보면 손이라도 흔들어 주고 싶었어요. 곰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언덕 위로 올라가 뒷모습을 감추었어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초동이가 곰이 담소에 빠져 죽는 이유를 알았어요. 참나무 아래에 있는 쭈빗쭈빗한 바위, 울퉁불퉁한 바위 등이 곰의 발에 걸려서 곰이 넘어지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바위들을 쪼아 없애면 곰이 넘어지지도 않을 것이지요.
초동이가 다음날 커다란 망치를 들고 곰소 위의 언덕으로 올라갔어요. 울퉁불퉁한 바위를 한 개씩 커다란 망치를 가지고 쿵쿵 깨기 시작했어요. 언덕의 바위를 깨어 부수는 초동이의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했어요.
마을 어른들이 곰소에 올라와서 곰이 물이 빠져 죽었는지 살피러 왔다가 초동이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상해서 물었어요.
“초동아, 그 힘든 일을 왜 하는 것이냐?”
“예. 그저 도토리를 쉽게 주우러고요.”
초동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곰소의 곰을 잡아서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에이 사람아, 자네가 거기 있으니 곰이 내려오지 않아 곰소에서 곰을 잡아가는 횡재를 누릴 수 없네.”
“예, 어르신 일이 다 되어 갑니다. 빨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이 걸려 초동이는 그 많은 바위들을 모두 깨어 부수었어요. 도토리나무 아래 언덕이 마당처럼 평평하게 되었어요.
초동이가 도토리나무 아래 언덕의 울퉁불퉁한 바위를 모두 깨어 부수고 난 후부터는 곰이 담소에 빠져 죽는 일 없었어요. 마을 어른들이 하루 빠짐없이 곰소에 올라가 곰이 곰소에 빠져 죽었는지 살폈지만 빠져 죽은 곰이 없었어요.
마을 어른들은 한 달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곰소에 올라가 곰소에 혹시나 곰이 빠져 있는지 살폈어요. 마을 어른들은 곰이 곰소에 빠지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곰 고기 잔치를 하던 일이 무척 생각났어요.
“그때가 좋았어. 곰소에 올라가면 물에 둥둥 떠 있는 곰을 끌고 와서 커다란 솥에 넣고 삶아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하던 그때가 좋았어.”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마을 어른들이 모여 의논을 하다가 누군가 초동이의 말을 했어요.
“아마도 초동이 그 녀석이 범인이지 싶어.”
“초동이? 그 녀석이 왜 그래?”
“응, 내가 유심히 살폈는데, 비탈의 울퉁불퉁한 바위를 모두 깨부수고 난 후로는 곰이 담소에 빠지는 일이 없었어.”
“맞아. 곰이 도토리를 먹다가 그 바위에 걸려서 비탈을 뒤뚱거리다가 아래로 굴러 내려와 곰소에 빠졌지. 초동이가 그 비탈의 바위를 깨부순 후부터 곰이 담소에 빠지지 않았어,”
“그렇구나. 그 초동이 녀석을 불러다 물어보자.”
다음날, 마을 어른들은 초동이를 어른들이 모이는 마을 사랑방에다 불렀어요.
마을 사랑방에 불려 온 초동이는 어른들 앞에 죄인처럼 꿇어앉았어요.
마을 어른들이 초동이에게 나무라는 말투로 꾸짖었어요.
“초동이 네가 곰소 위 언덕의 바위를 깨부순 후부터 곰들이 곰소에 빠지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이냐?”
초동이는 이미 예견한 일이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왔어요. 아주 침착하게 그 일을 차근차근 공손하게 말을 했어요.
“우리 별금강 호수 마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라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에 곰들이 담소에 빠져 죽는다는 것은 우리 마을의 큰 흉이라고 봅니다.”
마을 어른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 마디씩 했어요.
“초동이 말이 맞다. 다른 지방 사람들은 별금강 호수가 하늘나라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알고 있는데 곰을 잡아먹다니?”
“그래 맞아. 우리가 비록 여태까지 곰소에서 죽은 곰을 끌어와서 곰 고기 잔치를 했지만 어쩐지 좀 이상하다.”
“그래도,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렇게 마음을 열고 웃으며 곰 고기 잔치를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어차피 죽은 곰인데 말이야.”
이때, 초동이가 조심스럽게 나섰어요.
“맞습니다. 어차피 곰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곰이 담소에 빠져 죽지 않게 하는 것도 별금강 호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것 같습니다.”
“초동이 말이 맞아, 우리 이참에 ‘곰소’ 이름을 없애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때요?”
마을 사람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곰을 잡아먹지 않는다는 의미의 ‘곰소’라고 부르자고 했어요. 그때부터 별금강 호수 아랫마을을 ‘곰소’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