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금강은 수려한 금강산에 있는 저수지이지만 사람들은 그 이름을 더 아름답게 부르기 위해 별금강 호수라고 불렀어요.
별금강 호수 언덕에 아주 넓고 커다란 바위가 호수 쪽으로 밋밋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면 엄청나게 큰 미끄럼틀처럼 생겼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썰매바위’라고 불렀어요.
이 거대한 썰매바위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눈, 비 그리고 바람에 씻겨 거울처럼 매끈하고 반들거려 동물이나 사람이 썰매 바위 위에 서면 아주 부드럽게 그 아래 별금강 호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정도라고 해요. 썰매바위 위에서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면 제법 오래 동안 썰매를 즐길 수 있었어요. 물론 그 긴 바위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재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지요.
썰매 바위가 끝나는 아래쪽에는 푸른 별금강 호수의 물이 출렁거리고 있어서 동물이나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재미가 있었어요. 썰매놀이 중에 사람이 상처를 입거나 동물이 다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별금강 호수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었어요. 그 마을은 바닷가에 조갑지처럼 집을 짓고 오순도순 모여 살았어요.
그런 바닷가 마을의 위쪽 한 집에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그 부부는 신혼 초부터 티격태격 다투며 살았어요. 싸우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이웃에까지 들려서 마을 사람들은 그들 부부가 항상 걱정스러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이웃집에까지 들렸어요, 남편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나면 잠시 후,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났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하는 일,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아 불만으로 가득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어요. 그들은 그런 일들을 부끄러움도 없이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이 모이는 곳에서 터놓고 말을 했어요. 어느 날, 남편이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앉아 놀면서 아내에 대한 불만을 터놓았어요.
“우리 마누라는 돌이야 돌, 결혼 첫날부터 무뚝뚝하게 웃음 하나 없는 돌이야 돌. 여자의 기본인 애교는 어디 갔는지, 얼음이야 얼음. 재미없어.”
“친구야, 그것은 자네가 하기 나름이지.”
“말도 말게나.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벙어리야, 벙어리.”
“그래도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야.”
“에키, 이 사람아 나도 할 만큼 했지. 그런데 더 갑갑한 것은 결혼을 한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기가 없어.”
“그것은 문제이군. 그러나 그것도 자네의 책임이 반이야.”
이러한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아내와 남편을 경계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의 아내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마을길에서 만나면 피하기까지 했어요. 한편으로는 그들 부부 때문에 마을의 분위기가 썰렁했어요.
그런 일이 계속되자, 부부는 그 마을에서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었어요.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그들 부부가 마을에서 떠나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흘이 멀다 하고 부부의 싸우는 소리가 옆집에까지 들렸어요. 어떤 때는 아내가 엉엉 크게 우는 소리가 자주 그 집의 담을 넘어오니, 마을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아주 싫어했어요. 특히 여자들은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을 싫어해서 마을길에서 만나면 무서워서 눈길을 돌리며 피하기까지 했어요.
이러한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지자, 마을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어요.
“그들 부부가 우리 마을에서 떠나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쉽게 되니, 그들 스스로 떠나면 몰라도 우리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우리 마을의 가장 높은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려 남편을 불러서 타이르라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만 모이면 그 부부 이야기를 하며 걱정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 남편을 ‘멍석말이’까지 하자는 말이 나왔어요.
며칠이 지나자, 그 소문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서 마을의 어려운 일이나 잘 풀리지 않은 일이 있으면 슬기로운 지혜로 일을 잘 풀어주곤 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일만 있으면 할아버지에게 찾아가 의논을 했어요.
그런 할아버지의 귀에 말썽 많은 부부의 이야기기가 들어가게 되었지요.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깊이 생각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그들 부부를 이 마을에서 떠나기를 바랄만큼 싫어한다면 이것은 마을 사람들, 그들 부부 서로가 불행이야.”
할아버지는 며칠을 두고 이 일을 깊이 생각한 후에 남편되는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조용히 불렀어요.
남편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 앞에 불려갔지만, 언제나 투박스런 그의 성질대로 할아버지 앞에서도 공손한 자세가 아니었어요. 할아버지도 그의 성질을 아는지라 말을 천천히 다정하게 했어요.
“이 사람아, 자네가 정말로 아내가 싫은가?”
“예, 그렇소. 그게 무슨 죄가 됩니까?”
“어허, 이 사람아 같은 마을에 살면 이웃도 생각해야지.”
“내가 이웃 사람들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합니까?”
할아버지는 긴 담뱃대만 몇 번 빨아드리고 깊은 생각을 하다가 아주 어렵게 한 마디 했어요.
“정말로 아내가 싫은가? 없어도 괜찮은가?”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나오자, 남편은 머뭇거리다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어요.
“시키는 대로 하지요.”
할아버지는 무엇인가 깊은 뜻이 담긴 묘한 웃음을 머금고 남편 되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어요.
“자네가 내 말을 꼭 지켜주어야 하네. 만약에 내 말을 어 기면 이 마을에서 떠나야 하네.”
할아버지의 말이 나오자, 무덤덤하던 얼굴로 앉아 있던 남편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할아버지 말에 귀를 기울이었어요.
“자네가 아내를 데리고 별금강 호수 썰매바위 위로 올라가게. 그 썰매 바위 가장 위쪽에서 자네의 손으로 아내를 썰매 아래쪽으로 힘을 주어 밀어버리게.”
“그러면 아내가 위험하지 않아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자네들 부부가 이 마을을 떠나게나.”
남편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무어라 답을 하지도 않고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할아버지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했어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화목을 해치는 일이라면 나 자신이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해야겠군.’
다음날 아침, 남편은 여태보지 못하던 다정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어요.
“자기야, 우리 별금강 호수 위의 썰매바위 구경을 갈래?”
아내는 오래간만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항상투박스런 말투로 다투기만 하던 남편의 입에서 다정한 말이 나오자, 아내는 눈웃음을 짓고 방긋 웃으며 말했어요.
“썰매바위? 당신이 그렇게 정답게 말할 때도 있나요?”
두 사람은 결혼 후, 처음으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별금강 호수 위의 썰매바위로 갔어요. 아내의 얼굴에 웃음이 방긋방긋 진달래꽃처럼 피어나고 주변의 경치에 정신이 홀렸어요. 잔잔한 호수의 푸른 물결, 호수 주변 바위의 기기묘묘한 형상들을 둘러보며 연신 얼굴에 웃음이 벙글벙글 했어요.
아내는 아주 밝은 얼굴이 되어 다정한 말씨로 남편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평소와 다른 살가운 말과 행동을 했어요.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아내가 다른 사람같이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였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하던 아내의 아름다움을 찾게 되었어요. 쌍거풀진 눈, 긴 속눈섭 그리고 머루알처럼 까만 눈동자의 생글거리는 눈웃음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어요. 더구나 말과 행동에서 여태 보지 못하던 부드러운 여성을 보는 것 같았어요.
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자, 별금강 호수의 산책이 너무도 황홀했어요.
두 사람은 도란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덧 썰매바위의 가장 위에까지 왔어요. 남편은 마음속에 두 가지의 생각으로 괴로웠어요. 오늘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의 표정, 말씨 그리고 다정한 행동을 보니 도저히 할아버지 와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어요. 한 편으로는 오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을에서 쫓겨나야 한다니 그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때, 남편의 머릿속에 근엄하고 무서운 할아버지의 얼굴이 차가운 칼처럼 떠올랐어요. 남편은 입술을 깨물고 아내의 손을 잡고 나란히 썰매 위에 섰어요.
“자기야, 이 썰매바위는 노루나 사람들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놀이를 하던 곳이래. 우리 함께 놀이를 할까?”
“제 정신 맞아요? 저 먼 아래까지 미끄러지다 다치면 어 떡하려고요?”
그렇게 말을 하며 아내가 바위썰매 아래쪽을 바라보았어요. 남편은 그 때를 놓지 않고 두 손으로 아내의 어깨를 힘차게 아래쪽으로 밀쳤어요.
“아앗, 사람 살려!”
아내는 고함을 지르면서 응겹 결에 남편의 손목을 움켜잡고 썰매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남편도 아내의 손에 끌려 썰매바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두 사람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바위 썰매를 타고 내려갔어요. 그들의 눈에 금강산의 파란 하늘이 지나가고 별금강 호수의 경치들이 빠르게 지나갔어요.
썰매바위를 그렇게 신나게 내려가던 부부는 그 아래 푸른 호수에 ‘첨벙’ 빠져 들어갔어요. 남편은 정신이 없이 호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 여보! 여보!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내는 손을 허우적이며 남편 쪽으로 와서 남편의 손을 잡이 끌고 바위 쪽으로 수영을 해갔어요. 두 사람은 바위 아래의 나무뿌리를 잡고 호수 밖으로 나왔어요.
아내는 남편을 호수 물속에서 구하여 언덕에 간신히 앉히고 남편을 향해 투정처럼 나무라기 시작했어요.
“당신은 어쩌면 그러한 위험한 장난을 해요? 그 긴 바위 썰매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동안 난 꼭 죽는 줄만 알았지요. 아이구 미워라. 당신, 다친 데는 없나요?”
아내의 다정한 말에 남편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빌기만 했어요.
얼마 후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남편은 아내의 사랑스런 모습에 눈시울을 적시며 진정한 말을 했어요.
“여보 당신의 그 예쁜 모습을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예쁜 눈동자, 모란꽃 같은 웃음 그리고 남편을 아끼는 그 따뜻한 마음씨. 정말 사랑해요.”
“저도 당신의 마음이 깊어 이렇게 아름다운 별금강 호수 그것도 썰매바위까지 데리고 와서 재미있는 장난을 칠 줄을 몰랐어요. 당신의 정이 이렇게 깊고 뜨거운 줄을 오늘 처음 알았어요.”
남편은 그런 말을 하는 아내를 보자,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어요. 지나간 일들이 일시에 씻어지고 뜨거운 사랑의 강물이 흐르는 것 같았어요.
“여보 사랑해.”
남편은 아내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았어요. 뜨거운 포옹으로 사랑이 강물처럼 흘렀어요.
다음날, 남편은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내와 별금강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어요.
“어르신 시키는 대로 썰매바위에 위에서 아내를 호수 쪽으로 밀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아졌단 그 말이지?”
“아니, 어르신께서 어떻게 그 일을 아시나요?”
“허허허, 이 사람아, 내가 이 별금강 호수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그 썰매 바위에서 밀어도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네. 이 사람아, 사슴이나 노루도 간혹 썰매를 탄다고 하네.”
할아버지는 그 일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에 웃음이 가득 흘렀어요. 그 뒤부터 별금강 호수의 썰매바위가 ‘의좋은 부부 썰매바위’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