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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5-26 16:10

  • 오피니언 > 금강산이야기

93. 장안사의 벽화를 그린 열한 살 소년

기사입력 2022-12-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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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야기랍니다.

8세의 이 정이라는 어린 화가가 그림을 그렸어요. 그 솜씨를 뛰어나 조선의 성인 화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화가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승려화가들, 그림을 좋아하는 선비들까지도 이 정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어요. 조선의 화가들 중에 아주 이름 있는 화가 한 사람이 이 정의 그림을 보고 놀랐어요.

이 정은 그림에 천재성을 타고 난 아이이다. 내가 40 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산의 묘한 부분을 나타내지 못하는 데 저 아이는 모양, 명암, 색체까지 기묘하게 묘사하고 있어.”

그런 칭찬을 받고 있는 이 정11세가 되던 봄에 부푼 꿈을 안고 금강산을 찾았어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훌륭한 산수화로 남기는 것이 그의 일생 소원이었어요.

이 정은 11세의 나이에, 자기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힘이 센 하인 한 사람과 함께 용감하게 금강산으로 갔어요. 빼어난 경치가 펼쳐지는 내금강 골짜기를 오르다가 기기묘묘한 바위 폭포 앞에 섰어요.

이 정은 하인에게 말했어요.

여기 화구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지켜주세요.”

, 도련님, 제가 하는 일이 그 일이지요. 그런데 제가 잠시 장안사에 올라가서 도련님이 며칠 밤 주무실 방을 마련하고 오겠습니다.”

이 정은 등에 지고 다니던 화구들을 바위 위에 펼쳐놓고 수려한 산봉우리와 폭포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어요. 이정이 그림에 빠져들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해요.

그림을 얼마 동안 그렸을까요?

장안사 절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림 앞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그림이 생동감에 넘치고 선과 색감이 선명해서 장안사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소년화가의 뛰어난 그림 솜씨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칭찬을 아까지 않았어요.

저기 바위그림 좀 봐라. 바위 위에 파란 이끼가 너무 도 곱게 보이네. 꼭 살아있는 이끼 같다.”

그 바위 위에 소나무를 봐라. 파란 소나무 잎이 금세라 도 바람에 흔들릴 것 같아.”

그의 그림 속에는 바람도 들어 있고, 새소리도 들어있고, 산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들어 있을 것 같았어요.

점심나절이 될 즈음, 장안사에 갔던 하인이 소년화가에게로 내려왔어요.

하인은 소년의 그림을 보고 얼굴이 화안하게 밝아오며 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했어요.

도련님, 저 바위, 소나무를 들여다보면 금강산의 물소리 가 들리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내 마음에 들지 않아요. 금강산은 저렇게 아 름다운데, 그림이 따라가지 못해요.”

소년화가는 그림을 들여다보고 무언가 아쉬운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 깊은 무엇을 생각했어요.

소년화가는 화구와 그림을 챙겼어요. 화구를 다 챙긴 소년화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하인에게 말했어요.

혹시 불씨 가지고 있나요?”

. 도련님, 부싯돌이 있어요.”

그 불씨 좀 지펴주세요.”

하인은 소년화가가 왜 불씨를 찾는지 몰랐어요. 하인이 주변의 불쏘시개를 준비해서 부싯돌을 탁탁 치자, 연기가 모락모락 나더니, 이어 작은 불꽃이 피어났어요.

소년화가는 여태까지 정성들여 그린 그림을 내더니 불길 속에 태웠어요. 연기가 모락모락 나더니 이어 그림이 활활타는 불꽃 속에서 사라졌어요.

하인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놀라서 소년화가에게 물었어요.

도련님! 세상에 그 좋은 그림을 불에 태우다니요?”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그림은 하늘 창고에 올려 보내어 버려요. 혹시라도 남의 손길에 닿으면 부족한 그대로 남 게 되어 내 그림의 격을 떨어뜨려요.”

제가 감히 도련님의 높으신 마음을 알 수가 있나요? 그 러나 너무 아까와요.”

소년화가와 하인은 화구와 물건들을 챙겨서 금강산의 4대 사찰의 하나인 장안사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어요.

소년 화가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바위, 소나무 그리고 산꽃 하나를 예사로 보지 않았어요. 그 모양, 색깔, 향기까지 자세하게 관찰하였어요. 어쩌다 머언 산봉우리의 흰 구름이 흘러가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으음, 저 흘러가는 구름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소년 화가와 하인은 장안사 숙소를 잡아 짐을 풀고 쉬었어요. 하인은 저녁 식사나 이런 저런 일을 준비하기에 바빴으나 소년 화가는 마루에 앉아 앞 산 봉우리에 감도는 안개를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했어요.

안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뭉게뭉게 흐르면서 말하는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화폭의 그림 속에 옮 길 수 있는데 나는 아직 그게 어려워.’

밤이 되었어요. 금강산의 초 여름밤은 산이 몸살을 하는 때이지요. 금강산 숲이 떠내려갈 것 같은 소쩍새 소리가 홍수를 이루고 산징승들이 밤잠을 자지 못하고 움찔거리는 소리가 금강산을 흔들었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었어요.

천재 화가 소년은 그의 생활 습관대로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하인이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장안사 경내를 한 바퀴 산책하고, 오늘 장안사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갈 계획을 생각했어요.

아침 예불이 끝날 즈음 되면 주지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야지.”

아침나절이 되기를 기다려 천재소년 화가는 주지가 있는 아주 너른 방으로 찾아갔어요.

주지 스님의 너른 방에는 여러 노승들이 둘러 앉아 열띤 논쟁을 하느라고 천재화가 소년이 방에 들어가도 관계하지 않았어요.

주지 스님이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어요.

여러 원로 스님께서 아시다시피 우리 장안사 중건 기념 으로 법당 둘레 벽화를 그리고자 합니다. 어떤 내용으로 그릴지 토론하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장안사 말사에 있는 주지 스님들도 함께 한 자리라서 주지 스님 방안이 여러 스님들로 가득 차 찼어요.

장안사의 원로 스님이 고개를 펴고 아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장안사는 금강산의 4대 사찰 중의 한 곳입니다. 그러한 유서 깊은 장안사는 불교사원의 중추적 위치에 걸 맞는 극락세계의 벽화를 그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장안사 말사에서 온 스님이 아주 조심스러운 말로 자신의 의견을 내었어요.

저는 선비의 상징인 4군자 매화, 난초, 국화, 참대를 장안사의 벽화로 그리면 품위가 나타날 것이라 믿습니 다.”

다른 말사에서 올라온 스님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마치 화가 난 듯이 말했어요.

적어도 우리 장안사 벽화에는 황룡이나 봉황을 그려야 합니다.”

주지 스님이 어쩔 바를 몰랐어요. 자신의 의견을 낸 스님들은 모두가 자기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을 했어요. 말사의 어려 스님들은 서로 편이 갈라져서 의견이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았어요.

주지 스님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더 이상 다른 의견이 나오지도 않고 세 가지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어요. 주지 스님도 난처한 기분으로 둘러앉은 스님들을 돌아보았으나 신통한 의견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았어요.

이때, 문지방에 앉아 있던 이 정이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어요.

무례한 행동이오나 저도 한 마디 드리겠나이다.”

방안의 둘러 앉아 있던 스님들이 뜻밖에 나타난 그 천재

소년 화가 이 정을 보고 의아해 했어요. 주지 스님도 어안이 벙벙하여 이 정을 주의 깊게 바라보다 한 참 후에야 입을 열었어요.

소년은 대체 누구인고?”

, 저는 한양에서 온 이 정이라고 하옵니다.”

이 정 이라? 이 정이라고?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구나.”

이때, 주지 스님 옆 자리에 앉은 스님이 주지 스님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소곤거렸어요.

주지 스님, 제가 시주를 다니는 집에 저 천재 화가 소년의 그림을 본적이 있는데 조선 땅에서는 저만한 화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주지 스님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재소년을 점잖게 향해 말했어요.

그대의 의견을 말해보게나.”

스님들께서 어린 저를 불손하다고 말씀하시겠지만 제 어린 생각에는 여태까지 하신 세 분 스님의 말씀이 합당치 않다고 봅니다.”

소년의 말을 듣고 벌컥 화가 난 스님들이 당돌한 소년을 향해 화살처럼 말을 쏟아내었어요.

뭐라고? 감히?”

어린 네가 무엇을 안다고?”

감히, 중대한 장안사의 벽화를 논의하는 이 자리에!”

이 정은 스님들이 발끈하자, 전혀 그런 것에 동요됨이 없이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어요.

금강산은 천하의 명산이옵니다. 이웃나라 사람들도 고려국에 한 번 태어나서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금강산의 경치가 너무도 신비하여 부처의 품속이나 부처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님들께서는 극락세계를 그리거나 황당무계한 황룡이나 봉황 같은 것을 그리려 하나이까?”

여기까지 찬찬히 말한 천재 소년 화가는 스님들의 표정을 살핀 후, 자기의 주장을 떳떳이 내세웠어요.

저의 어린 소견에는 장안사가 4대 사찰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천하절경인 금강산 산수도를 벽화로 그리는 것이 합당한 줄로 압니다.”

스님들은 비록 어린 소년이 하는 이야기이지만 논리 정연한 그 말에 어떻게 다른 의견을 말할 수가 없었어요.

드디어 주지 스님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어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소년의 말이 맞은 것 같소이다.

장안사 벽화에 금강산 산수화를 그리지 않고 어찌 우리 장안사로 할 수 있겠소. 이제 남은 것은 조선팔도에서 명망 높은 화가를 초빙해 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장안사 벽화를 그릴 조선의 화가를 추천해 주십시오.“

주지 스님의 말이 끝나자, 소년이 아주 겸손한 자세로 말했어요. 목소리가 금강산 계곡의 물소리처럼 맑았어요.

주지 스님, 제가 비록 나이가 어리고 재간이 없으나 저 에게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여 장안사 벽화를 그리겠 나이다.”

방안에 둘러앉은 스님들은 모두가 놀랐어요. 어찌 보면 당돌한 소년이 철부지 같기도 한데 말과 행동을 보면 자기 말에 충분히 책임을 질 것 같은 신뢰성을 엿볼 수 있었어요.

주지 스님은 곁에 앉은 스님으로부터 소년이 천재 화가라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믿음성이 갔지만 여러 스님들 앞에서 그의 산수화 솜씨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네 이 사람아, 실례된 말이지만 여기 스님들 앞에서 붓을 한 번들어볼 의향이 있는가?”

천재 소년화가도 주지 스님의 속내를 알아차렸어요. 소년은 즉시 화선지, 붓을 준비했어요. 스님들이 둘러앉은 한 가운데에 화선지를 펴놓고 붓으로 금강산의 절경을 척척 그려나갔어요.
천재 화가 소년의 붓이 화선지 위에서 움직일 적마다 기기묘묘한 바위, 낙락장송 그리고 폭포가 그려졌어요.

그런 소년의 그림을 보고 있는 스님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의 천재성을 칭찬했어요.

! 과연 대단한 화가이군. 조선팔도에 이런 화가가 있을 수 있나?”

장안사 벽화를 금강산 산수화로 그리자는 의미를 알겠다.”

“11살의 어린 나이로 어떻게 저런 천재적인 산수화가 나오나?”

스님들 모두가 장안사 벽화를 소년에게 맡기자는 의견에 찬성을 했어요.

그 후, 11살 소년화가 이 정은 심혈을 기울여 장안사 벽에 금강산의 산수화를 그렸어요. 그가 그린 벽화는 장안사를 찾은 스님, 신도들이 보는 가운데 완성되었어요.

그 벽화에는 금강산의 12천봉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생동감 있는 산수화였어요.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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