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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1-26 16:10

  • 오피니언 > 황진원 칼럼

정답이 없는 사람

기사입력 2022-11-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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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원
군북출신 전. 장유초 교장

중국 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나라에 큰 기근(흉년)이 들자 검오(黔敖)라는 사람이 길가에 밥을 차려놓고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마침 어떤 굶주린 사람이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신발을 끌며 멍한 눈길로 힘없이 오고 있었다. 검오는 쯧쯧! 어서 와서 밥을 드시오!” 그러자 그 굶주린 사람은 검오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나를 불쌍히 여기면 주는 음식이라도 먹지 않소. 그래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오.” 검오가 미안하다고 따라다니면서 사과를 했지만, 그는 끝내 밥을 먹지 않고 굶어 죽고 말았다. 굶주림 앞에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는 정말 정답이 없는 사람이다.

정답이 없는 사람’,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가. 분명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 사람으로 떠오른다. 고집불통이고, 덤벙거리고, 주관도 소신도 없는 사람, 막무가내, 천방지축 등 남의 얘기를 듣지도 않고,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떠오른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복수정답일 때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에서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바둑돌을 놓고 볼 때 흰 돌은 흰색이 정답이고, 검은 돌은 검은색이 정답이다. 회색을 놓고 검다 하고 희다 하는 것을 따지는 게 아니다. 문제는 흰색을 검다하고, 검은색을 희다고 하는 것을 우리 생활에서 너무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 규범, 도덕, 윤리, 관습, 전통 등에서 하나의 정답이 뚜렷이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 정해진 정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답으로 말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을 정답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정치인을 보자. 같은 사안을 놓고 여당의 정답이 따로 있고, 야당의 정답이 따로 있다. 한 번이면 그럴 수도 있다. 번번이 같은 생각이고 같이 행동한다. 그렇다고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수시로 헤쳐 모이는 것도 아니다. 법과 원칙 앞에서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기편이면 범법자도 옹호한다. 국민만을 의식해도 정답은 하나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 앞에는 국민도 없다. 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은 국민의 대표자고 지도자다. 모든 일에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이러니, 국민의 가치관이 어떻게 바로 설 수 있겠나. 그들 편의 이익을 위해서는 선도 악으로, 악도 선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가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답을 찾기는 냉장고에서 더운물 찾기만큼 어렵다.

어느 신문에서 어느 작가가 쓴 글이 눈길을 끈다.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정당만 지지한다니라는 제목 아래, 어느 정당의 골통 지지자의 반응을 적은 글이다. “일생동안 ○○당만 찍었으니 미워도 다시 한 번 찍겠다. 실수 좀 했다고 버린다면 그게 신뢰인가. 난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정당 지지할 일은 없어.” 주로 이런 내용으로 적은 글을 놓고 작가는 정치가 아니라 신앙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 눈에는 정당만 있고 국민은 없는 모양이다.

정답이 있는 사람은 타당한 주관이 있고, 소신이 있다. 남에게 좀처럼 현혹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고 정직한 행동을 한다. 이런 사람은 정답에 따라 세상을 바르게살기 때문에 항상 당당하고 떳떳하다.

정답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요령껏 산다. 항상 자기중심이라 상황에 따라 정답의 기준이 달라진다. 자기가 비뚤어진 것은 모르고 남을 바로잡으려 하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사는 모습이 항상 불안하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정답이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정답이다. 남을 대할 때는 공손히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정답이 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법도 원칙도 상식도 없는 사람이다. 정답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사회 낙제생이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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