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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5-26 16:10

  • 오피니언 > 금강산이야기

89. 금강산 폭포들과 싸우는 선비

기사입력 2022-10-1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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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사는 선비가 봄을 맞아 금강산 구경을 왔어요.

그는 항상 서재에 들어 앉아 책만을 읽는 선비였어요. 선비는 그 많은 책들을 외울 정도로 읽어 시를 짓는 일이나 문장을 짓는 일에 아주 능숙하였어요.

마침, 선비가 별금강 호수 마을에 도착하자, 그곳 마을의 선비들이 넒은 바위 위에 둘러 앉아 시회를 열고 있었어요.

한양의 선비가 기웃거리다가 그들 곁에 슬그머니 주저앉자, 그곳 마을 선비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일어나서 한양선비를 반갑게 맞으며 말을 했어요.

보아하니, 한양에서 온 선비인 것 같은데, 우리 시회에 앉으려면 시 한 수를 읊어야 앉을 수 있지요. , , .”

선비는 별 주저함이 없이 일어서서 몇 편의 시를 술술 읊었어요.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별금강 호수의 기묘한 절경을 예찬하는 시를 몇 편 읊었지요.

한양 선비의 시를 듣고 있던 선비 중 한 사람이 나서며 그 선비의 시를 빚는 재주에 놀라 인사를 나누자고 했어요.

내가 금강산에 살면서 한양의 많은 선비를 맞았지만 그대처럼 즉석에서 이렇게 좋은 시를 읊는 것은 처음이오.”

마을 선비들은 한양의 선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어요.

그때 마을에서 가장 젊은 선비가 일어서서 한양의 선비에게 어렵게 말을 했어요.

선비님, 즉석에서 읊는 시에 감동을 했습니다. 어려운 청인데요. 우리 이 외금강 근처에는 폭포가 아주 많아요.”

여기까지 말한 젊은 선비는 주변의 마을 선비들을 둘러보고 가벼운 웃음을 머금고 말했어요.

한양의 선비님, 외금강 골짜기에 많은 폭포가 있는데 우 리는 솔직하게 글이 짧아서 그 폭포의 이름을 짓지 못하 고 있습니다.”

젊은 선비가 여기까지 말을 하고 멈추자, 주변의 선비들이 그 젊은 선비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듣고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어요.

여어- 한양 선비 그 뛰어난 글재주로 우리 마을 골짜 기마다 폭포 이름을 지어주시오.”

한양의 선비가 겸손한 자세로 일어나서 카랑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둔한 제가 어쩌다 오늘 금강산 경치에 감동을 하여 몇 편의 시를 읊었을 뿐입니다. 그런 제가 감히 어떻게 이 골짜기의 폭포 이름을 짓는다 말입니까? 이곳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

마을의 선비들이 진정으로 한 마디씩 하며 금강산 골짜기의 폭포 이름을 지어 줄 것을 간청했어요.

한양 선비님, 선비님의 영특한 글재주로 금강산 골짜기의 많은 폭포 이름을 지어 준다면 다시없는 영광이지요.”

한양의 선비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자기가 금강산의 폭포 이름을 지어 놓으면 후세까지 영원히 남을 것이라 생각하니 은근히 욕심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러시다면 부족한 저의 재주로 지어 보도록 하지요.”

한양 선비양반, 고맙습니다.”

마을의 선비들은 한양의 선비를 앞세우고 폭포가 많은 외금강 골짜기로 들어갔어요.

처음 다다른 폭포 앞이었어요.

바위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하얀 물줄기를 보고 모두가 그 시원함에 숨을 크게 들여 쉬었어요. 한양의 선비는 그 폭포를 보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으음. 폭포의 물방울이 마치 구슬이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구슬이 위로 솟구치는 폭포> 분주(噴珠)폭포로 하면 되겠군.’

한양의 선비는 폭포 이름을 그렇게 정하고 고을의 선비들을 향하여 자신 있게 큰 소리로 말했어요.

이 폭포는 물방울이 구슬처럼 위로 솟구치는 형상의 폭포이니 분주폭포로 명명하고자 합니다.”

한양 선비의 말이 떨어지자, 마을 선비들이 좋아서 손뼉을 치며 환호를 질러대었어요.

! 구슬이 솟구치는 폭포 분주폭포멋진 이름이다.”

한양의 선비도 솔직히 그 이름이 마을선비들의 마음에 들지 조심스러웠지만 모두가 환호를 지르며 좋아하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 분주폭포의 이름을 말하자, 폭포 위의 아름드리 고목에서 -’ 하는 소리가 한양 선비의 귀에만 들려왔어요. 한양의 선비는 그 이상한 소리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은 소리로 들렸어요.

한양의 선비는 그런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무언가가 마음속에 맴도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았어요.

마을 선비들은 한양 선비를 데리고 다음 폭포로 올라갔어요. 그 폭포 앞에 이르러 한양의 선비는 마을선비들에게 물었어요.

이번 폭포 이름은 무엇으로 정할까요? 여러분이 말씀해보십시오.”

마을 선비들이 입을 꼭 다물고 말을 하지 않자, 한양 선비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어요.

보시다시피 금구슬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것 같지요. 그래서 금주(金珠)폭포라고 하겠습니다.”

마을선비들이 좋아서 손뼉을 쳤어요.

폭포의 물방울이 금구슬이 쏟아지는 것 같다하여 금주폭 포라고. 너무 좋다. 절묘한 표현이다.”

한양의 선비는 폭포 주변에서 숨을 들여 쉬며 조용하게 귀를 기울이었어요. 그러자, 분주폭포에서 들은 것 같은 소리를 또 들었어요. -하며 비웃는 것 같은 소리였지만 어디서 나는지를 몰라 고개만 갸웃거렸어요.

다음 폭포 앞에 닿았어요.

폭포 모양이 다른 폭포와 모양이 달랐어요. 두 줄기의 물길이 힘차게 내려 쏟고 있었어요. 마을 선비들도 한양 선비가 어떤 이름을 붙일까 궁금했어요.

한양의 선비가 폭포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폭포가 두 줄길 물길로 쏟아지고 있지요. 특이하지요. 그 래서 빨랫줄 폭포 즉 이선폭포라고 합시다.”

! 그 참 특별한 폭포 이름이다. 이선폭폭?”

마을 선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선폭포이름을 불러보았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난데없이 절벽 위에서 주먹만 한 돌 이 굴러 떨어지다 한양 선비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어요.

아얏!”

선비의 이마에 시퍼런 멍이 들었어요.

마을 선비들이 우루루 모여 들어 선비의 이마를 살폈지만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니었어요.

한양의 선비와 마을의 선비들은 금강산 골짜기를 올라가면서 차례로 폭포의 이름을 지었어요. 그럴 때마다 마을 선비들은 한양 선비에게 큰 손뼉을 쳐주었어요.

한양의 선비가 폭포 이름을 지은 것은 이러하지요. 사방이 절벽이 되어 물이 쏟아진다하여 천하폭포, 길이가 천길이나 된다하여 층층폭포, 누런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것 같다하여 황룡폭포라고 정했어요.

이 작업이 끝나자, 마을의 선비들이 한양의 선비를 향하여 힘찬 손뼉을 치며 폭포의 이름을 순서대로 노래처럼 불렀어요.

우리 금강산 폭포마다 이름이 있네. 분주폭포, 금주폭포, 이선폭포, 천하폭포, 층층폭포, 황룡폭포. -”

! 만세다, 만세.”

그들은 아름드리 참나무와 잣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가지고 온 음식들을 늘어놓고 한양 선비에게 술 한 잔을 권하기로 했어요.

한양의 선비는 마을 선비들이 권하는 술 한 잔과 안주 한 점을 먹고는 돗자리 뒤쪽으로 나와 누었어요. 돌에 맞은 머리고 아프고 몸도 피곤해서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한양의 선비는 깊은 꿈속에서 금강산 괴물 혼령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어요.

도토리 왕관을 쓴 괴물이 높은 자리에서 여러 괴물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늘의 회의는 몇 백 년 전에 한양의 선비가 이곳에 와서 폭포의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그 동안 그 이름을 듣고 있는 우리 폭포들의 불만이 너무 많아 가슴을 열어놓고 자기 의견을 말해봅시다.”

선비는 뜻밖에도 자기가 한 일이 화제에 오르자 귀를 기울이고 들었어요. 폭포들이 자기의 불만을 토로 했어요.

그 선비란 작자가 나를 보고 물을 뿌리는 폭포가 아니라 구슬을 뿌리는 분주폭포라고 하였소. 몇 백 년을 내가 그 이름으로 지내왔으니 억울하지요.”

그것은 그래도 괜찮소이다. 내가 누런 물을 쏟아 붓는 다고 금주폭포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억울해요.”

가장 억울한 것은 나 이선폭포이지요. 세상에 신선한 폭포를 어찌하여 빨랫줄에 비긴다 말이오?”

그렇지요. 그 녀석이 길이도 재어보지 않고 나를 천길폭포라고 했소.”

말이 막혀, 내 원 참. 끔찍한 누런 용이 뭐요? 황룡폭포라고 하네요.”

사람의 발길에 밟히기만 하는 층층폭포가 웬말이요?”

폭포들이 품고 있던 불만들을 쏟아내자, 높은 자리에서 왕관을 쓰고 있던 괴물이 노발대발해서 고함을 질렀어요.

, 참으로 고약한지고. 그 많은 책을 읽었다는 선비란 자가 폭포의 이름을 앞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부르게 하다니? 우리 폭포가 사철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자가 이름을 함부로 짓다니! 그 놈을 어떻게 벌을 줄까?”

그 때였어요.

금강산 산신령이 어슬렁거리며 그곳에 나타났어요.

어험, 그 무엇이 소란스럽구나.”

금강산 산신령이 나타나자 모두가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였어요.

금강산 산신령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괴물대장에게 물었어요.

무슨 일이냐?”

신령님, 금강산의 폭포이름을 한양의 선비란 자가 함부로 지어서 오늘 우리들이 성토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냐. 나도 저 위에서 다 듣고 왔다. 그런데 너희들 편만을 들을 수 없구나. 사물의 이름이란 그 특징을 잡아서 짓는 것이거늘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못된다. 내가 너희들 편에서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의미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의미를 합해서 지었다면 하는 욕심은 가져보았다. 예를 들면 선녀폭포, 용궁폭포 등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더라.”

산신령이 그 말을 남기고 어슬렁거리며 자리를 피해 주었어요.

다시 괴물 대장이 방망이를 콩콩 치며 말했어요.

산신령님의 말씀도 좋지만 우리들의 일은 우리가 해결 하자.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때, 여러 폭포들이 다 같은 말을 했어요.

저는 산신령님의 말이 참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소 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눈을 볼 수 있는 것 이외에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선비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관을 쓴 괴물이 방망이를 콩콩 치며 아주 큰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폭포 이름을 함부로 지은 그 녀석을 잡아들여 지옥으로 보내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저기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불만이 많은 층층폭포가 나서며 말했어요.

그 녀석은 이미 세월이 지나서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선폭포가 나서며 고함을 지르고 말했어요.

그 녀석이 나를 빨랫줄 폭포라고 하기에 얼마나 화가 났던지 주먹만 한 돌을 굴러 이마에 상처를 내어놓았습니다. 이마에 상처 난 놈만 찾아서 저승으로 보내면 됩니다.”

한양의 선비가 이선폭포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바싹 들어 꿈에서 깨어났어요. 너무도 섬뜩한 꿈이라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마을 선비들에게 꿈 이야기를 했어요.

마을 선비들은 한양 선비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우리들은 폭포의 신비함, 장엄함만 보고 말을 했지 폭포가 지니고 있는 속성,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은 없는 것 같아.”

한양의 선비는 마을 선비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성했어요.한 그루의 나무, 한 개의 바위, 한 포기의 산꽃이라도 이름을 지을 적에는 그 사물이 가진 속성에 들어가서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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