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서 오래 동안 벼슬을 하던 관리가 외금강 쪽의 아름다운 고을에 원님으로 발령을 받고 왔어요.
그가 발령을 받은 고을은 금강산에서도 특별히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신선골에 있는 책상바위, 평평하고 넓은 너럭바위 등이 그림같이 펼쳐진 마을이지요. 그 아름다운 별금강 호수도 가까이 있었어요.
고을 원님은 부인하는 첫날 감영에서 일을 보는 고을의 관속들을 모아놓고 정중하게 부임인사를 했어요. 그러자 고을의 관속들이 새로 부임한 원님을 모시고 대접을 하기로 했어요. 그들 관속들이 모여 의논한 끝에 별금강 쪽의 골짜기에 가서 식사와 술을 마시면서 가벼운 인사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어요. 그들 중에 원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이방’이 나서서 원님에게 말했어요.
“원님, 이곳 고을에는 원님께서 처음 부임하시면 외금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금강 근처의 바위 쪽으로 모셔서 함게 가벼운 식사를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나이다. 어떻게 할까요?”
“이곳은 내가 낯선 곳이니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나.”
이방은 관속들 다섯 명과 관기들 중에 예쁜 기생 몇 명을 데리고 별금강 쪽으로 올라갔어요.
금강산 골짜기에 접어들자, 원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변 경치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어요. 기묘한 바위, 노송, 맑은 담소 등 연 이어 나타나는 경치를 보느라고 걸음이 차츰 느려졌어요.
금강산 별금강(호수)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마당바위(너럭바위)에 다다르자, 오늘의 안내를 맡은 이방이 걸음을 멈추고 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원님, 이곳이 금강산 경치를 관망하고 별금강도 내려다볼 수 있으며 술을 드시기에 좋습니다. 어떠하신지요?”
“자네들이 좋다면 나도 좋네.”
그들은 마당바위에 둘러 앉아 처음 부임한 원님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준비해 온 음식을 기생들이 마당바위 위에 펴놓기 시작했어요.
별금강 호수의 아름다운 주변의 경치가 잠잠히 비추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음식을 먹으며 담소가 오고 갔어요. 차츰 술잔이 오고 가자, 기생들이 춤과 노래로 원님을 환영했어요. 함께 온 관속들도 흥겨워 연신 술잔을 주고받으며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정작 이 자리에서 가장 즐거워해야 할 원님은 그냥 돌부처처럼 무덤덤하게 앉아 술잔만 기울이었어요. 그는 한양에서 예쁘고 재치 있는 기생들과 놀다가 시골의 기생들이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지 않자 별로 기분이 나지 않았어요.
그때, 이를 재빨리 눈치 챈 예쁘고 젊은 기생이 원님에게 공손하게 술잔을 올리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어요.
“사또님, 저는 온정리에 사는 소녀이옵니다. 이곳 금강산 은 산수가 너무도 아름다워 달 밝은 밤이 되면 하늘나라 에서 예쁜 선녀들이 내려와 성인들과 놀다가 새벽이 되면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 하옵니다. 근자에는 성인들이 오 시지 않아 하늘의 선녀들이 금강산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그래? 그 선녀들이 내려오는 곳이 어디이냐?”
“신선골에 있는 무희바위라고 합니다.”
원님은 그 기생의 말에 귀가 솔깃했어요.
“무희바위? 그것을 믿어도 되나?”
“얼마 전에도 보름달이 밝게 뜨는 밤에 선녀들이 그 바위에 내려와 춤을 추다 새벽이 되자, 달빛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하옵니다.”
원님은 기생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물었어요.
“그래, 너는 그 말을 믿느냐?”
기생은 원님의 말에 확신에 차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어요.
“제 말이 못 믿으시겠다면 달이 밝은 밤에 직접 한 번 가보시면 저의 말을 믿을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허허허”
원님은 그 말을 웃음으로 가볍게 넘겼지만 보름달 밤에 선녀가 추는 춤에 대한 환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꼭 그 자리에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마침 그 날 밤이 보름달이 환히 밝았어요.
원님도 술이 얼근하게 취하자 기생이 말한 무희바위가 은근히 생각이 났어요. 그는 이방을 불렀어요.
“자네 이 사람아, 우리 모두 무희바위로 안내하게나.”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책상바위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넓은 능선이 나오지요. 그곳을 지나면 무희바위 가 나옵니다. 저희들이 데리고 온 기생들은 돌려보내고 우리들만 무희바위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술이 얼근하게 취해서 금강산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갔어요. 금강산의 밝은 달빛을 받으며 무희바위에 도착하자, 모두들 술기운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위에 쓰러져 잠시 잠이 들었어요.
보름달이 덩실 떠 있는 외금강의 숲속은 금세라도 선녀들의 춤사위가 펼쳐질 것 같은 고요한 달빛이 흘렀어요. 초여름 풀벌레 소리, 숲이 떠내려 갈 정도의 소쩍새 소리가 골짜기에 가득했어요.
그들이 잠시 잠에 들어있는 동안 무희바위에 신비로운 일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잠결에 가벼운 방울소리가 들리고 고요를 깨우는 퉁소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며, 온몸이 스르르 녹을 것 같은 보드라운 향기가 주변에 안개처럼 포근하게 깔리기 시작했어요.
휘영청 보름달이 둥실 하늘 한 가운데 떠 있는데 은은한 통소 소리가 고요를 깨트렸었어요.
모두들 잠결에서 부스스 깨어났어요.
무희 바위 위에 나비 같은 가녀린 몸매에 하얀 날개옷을 입은 여인들이 손을 잡고 가볍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어요. 방금 하늘에서 날아 내려온 것처럼 발끝이 퐁퐁 나는 듯이 아주 가벼웠어요.
원이 숨을 크게 들여 쉬고 정신을 가다듬었어요.
“그대들이 정녕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인가요?”
원이 선녀들을 향해 정중하게 묻자, 선녀들도 조심스럽게 답을 했어요.
“그렀나이다. 저희들은 금강산 무희바위에 밝은 보름달이 뜨면 종종 이곳에 내려와 놀다 가곤하지요. 그런데 저희들의 놀이터에 말도 없이 침입한 분들은 누구신지요?”
선녀가 옥을 구르는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원님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응대했어요.
“나는 이 고을의 원이요.”
“예, 혹시라도 저희들의 무례한 행동을 탓하지 말아 주 십시오.”
선녀 중의 한 여인이 날렵한 몸짓으로 원에게 가까이 와서 나부죽이 고개를 숙여 절을 올리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어요. 선녀가 원님에게 절을 하며 가까이 오자, 하늘을 동동 날을 것 같은 향긋한 향기가 원님 주변에 안개처럼 아슴푸레하게 깔렸어요.
“저희들 선녀를 어여삐 여기시어 다독여 주시는 의미로 하늘나라에서 가져온 신선주를 한 잔 올리겠나이다.”
원님은 신선주 한 잔을 마시자, 온몸이 포근하게 무언가에 홀리는 것 같았어요. 그 술 몇 잔을 들이키자, 신선이 된 듯이 몸이 가벼워지며, 선녀들이 흔들리는 연꽃 송이처럼 아름답게 보였어요.
그 때를 노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날렵한 몸짓의 선녀가 원 가까이 다가와 원의 손을 잡고 춤을 추자고 했어요. 함께 온 관속들도 선녀들의 손을 잡고 넓은 바위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선녀들의 보드라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그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어요. 분위가 한껏 무르익어 가자, 선녀들이 잠시 쉬는 척하면서 한 두 선녀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어요. 관속 한 사람마다 한 선녀씩 짝을 지어 앉았어요.
선녀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시를 읊기 시작했어요.시회가 열리자, 잠시 분위기가 조용해졌어요. 선녀들이 시를 읊조리자, 원은 더욱 마음이 열렸어요.
“아! 달빛이 그대들의 마음이런가.”
원님의 옆에 앉은 선녀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진한 향기 나는 몸을 원님에게 가까이 가서 보드라운 손으로 원님의 손을 잡고 여러 사람들의 가운데로 나와서 춤을 추었어요. 달밤에 한 쌍의 나비가 날 듯이 황홀한 기분이었어요.
원님은 선녀의 두 손을 끌어당기며 노래까지 흥얼거렸어요.
“아름다운 이 밤에 그대의 옷자락이 나비의 날개처럼 흔들리오.”
새벽이 가까워졌어요.
선녀 중에 가장 예쁜 선녀가 원님 앞에 와서 다소곳하게 절을 하면서 소곤거리듯 말했어요.
“원님, 저희들은 이제 새벽 시간이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 밤 황홀한 추억 오래 간직하겠나이다.”
원은 아직 황홀한 꿈에서 깨지 않은 기분으로 그 선녀의 손목을 꼭 잡았어요. 원님이 자기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귀한 옥반지를 빼어 선녀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어요.
“이 반지가 별 것은 아니지만 금강산 무회바위에서 황홀했던 밤을 기억하여주게나.”
선녀는 손을 바르르 떨며 옥반지를 자기의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끼우고 원님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올렸어요.
“저희들은 달 밝은 밤이면 간혹 이곳 무희바위에 내려와 서 놀다가지만 이렇게 황홀한 밤은 처음입니다. 이 옥반 지는 원님을 뵈온 듯 소중하게 간직하겠나이다.”
선녀들을 별금강 호수 쪽으로 사라졌어요. 선녀들이 사라진 뒤로 몸을 녹일 것 같은 황홀한 향수 냄새가 무희바위에 안개처럼 피어올랐어요.
선녀들이 무희바위에서 사라져도, 무희바위에는 바람이 일적마다 향기롭고 신선한 향기가 선녀들의 옷자락처럼 일렁거렸어요. 그 바람결 따라 선녀들의 체취가 일렁이며 원님의 몸을 감싸고 있는 듯했어요.
다음날 아침나절이었어요.
원님은 관사의 방에서 길게 기지개를 켰어요. 어젯밤 그 황홀했던 선녀들과의 연회가 꿈속에서도 헤매었던지 늦게 깨어났어요.
원님은 아침에 관청에 출근을 했지만 어젯밤의 그 황홀한 기분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어요. 사뿐사뿐 걷는 예쁜 선녀의 발걸음, 온몸이 녹을 것 같은 황홀한 향기, 부드럽게 잡아주던 그 따뜻한 손 그리고 간드러진 그 목소리가 못 견디게 자신의 마음을 흔들었어요. 자신의 온몸을 감도 도는 포근한 선녀의 목소리가 귀속에서 여울물처럼 흐르는 것 같았어요.
원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체면을 불구하고, 이방을 불러서 물었어요.
“자네, 이 사람아 어제는 정말 수고 했네. 사실 객지에 오니 어제 그 시간이 못내 잊을 수 없네. 혹시 오늘 밤에 술 한 잔을 할 여인이 있을까?”
“예, 제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곳 지방에서는 온정리 여인들이 가장 매력이 있다고 하옵니다.”
이방은 오늘 저녁에 온정리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의 기생들을 뽑아 올려 연회를 준비했어요. 젊고 재치 있으며 애교가 철철 넘치는 기생들만 뽑았어요.
그날 밤, 원님은 기방으로 들어온 여인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어젯밤의 황홀함을 되살리려고 했어요.
“온정리 여인들도 정말 아름답군. 하늘나라의 선녀보다 는 못해도 아름답군.”
원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렵한 여인이 술에 취한 바알간 얼굴이 되어 원님 앞으로 가서 손을 바르르 떨며 술잔을 올렸어요.
“원님, 우리 온정리 여인들의 술잔을 받으시옵소서.”
원에게 술잔을 받쳐 올리며 바르르 떠는 여인의 손이 원의 눈에 보이자, 원의 눈이 번쩍 뜨여 휘둥그레지며 그 여인의 손목을 잡았어요. 그 여인의 손에 끼여 있는 반짝 빛이 나는 옥반지를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 옥반지가 원님의 눈에 익은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얘, 그 옥반지 좀 보자.”
“예?”
그 여인의 손가락에서 옥반지를 자세히 살펴본 원님은 깜짝 놀랐어요. 원은 그 여인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어요.
‘이 반지는 어젯밤 무희바위에서 내가 하늘나라 선녀의 손가락에 끼워준 반지인데?’
원님은 잠시 눈을 감고 어젯밤 그 황홀했던 시간으로 돌아갔어요. 나비처럼 사뿐사뿐 가벼운 그 발걸음, 간드러진 목소리 그리고 황홀한 하늘나라로 끌려갈 것 같은 그 황홀한 향기를 주던 선녀들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