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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뱃사공 노래비 놓고 함안-의령 갈등

함안군, 의령향토문화연구소 주장 하나하나 반박

기사입력 2021-12-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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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면 서촌리에 세워진 처녀뱃사공 노래비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된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의령군 의회 김봉남 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처녀뱃사공 노래 가사와 노래비에 대해 함안군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함안군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의령 향토문화연구소에서도 비문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의령 향토문화연구소는 지난 1014일 함안군 문화공보체육과에 공문을 보내왔다고 말하고 함안군은, 의령군 의회 김봉남 군의원과 의령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 내용을 발송했다.

특히 함안군은 지난 1일 함안군청 관계자와 홍순기 처녀뱃사공 보존회 회장이 의령 향토문화연구소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의령 향토문화연구소 측은 지난 1014일 보내온 답변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자 함안군 관계자는 보충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홍순기 보존회장은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 하는 현실에서 대응의 가치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함안군이 의령 향토문화연구소에 보낸 답변 내용을 보면

1. 악양생태공원 내 노래비 옆 안내판 설치 건의

-귀 연구소에서 건의하신 안내판 설치 및 내용은 우리 군의 입장과 다른 내용으로 함안군에서 홍보할 내용은 아니라고 판단되며,

-2000년 노래비 건립 이후 계속된 이견에 대한 우리 군 입장은 함안 악양루 주변이 처녀뱃사공 가사의 배경지임.

-2000년에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건립하게 된 이유는 전 국민의 애창 대중가요인 처녀뱃사공 작사 배경으로 확인된 악양루 주변에 이를 기념하고 관광자원화하기 위함이며.

-악양생태공원 내에 설치된 것은 노래비가 아니고 조형물이며, 설치된 배경은 악양생태공원 인근 지역의 우수자원인 처녀뱃사공도 알리고 악양생태공원의 활성화에도 기여하자는 처녀뱃사공 보존회의 건의에 의한 것으로 처녀뱃사공 발원지라서 세운 것은 아님.

 

둘째. 귀 연구소에서 노래비 뒷면 표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과 첨부자료(의령문화 제19)에 대한 우리 군의 입장

. 가사의 배경이 함안천(샛강)이고 그 당시 여건상 함안천은 노젓는 뱃사공은 있을 수가 없었다는 의견

-50년대 악양은 남강댐 건립 전으로 홍수 조절이 되지 않는 시기이므로 갈수기에는 줄배를 이용하였으나 그 외의 경우는 노를 저어 강을 건넜다고 하며, 50년대 악양루 부근에서 노가 달린 배를 찍은 사진도 있고 노젓는 배가 있었다고 인근 주민들이 증언하고 있음.

-노래 가사는 작사가인 윤부길 선생께서 6.25 전쟁으로 피난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중에 방목장(가야장)을 거쳐 대산장으로 가기 위해 함안천을 건널 때 하룻밤을 묵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노랫말로 표현한 것으로

-악양루에서 바라보이는 함안천과 남강을 낙동강이라고 한 이유는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으나 윤부길 선생이 주로 피난생활을 했던 곳이 부산지역이고 지명도가 있는 강이 낙동강이라 노랫말에 평소에 익숙한 낙동강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됨.

. 군에 간 오빠가 없었다는 이견

-50년대 당시 박경운의 집에는 박경운의 어머니와 처, 여동생, 딸과 막내동생 그리고 공비에 의해 죽은 둘째 동생의 처가 살고 있었고,

-박경운 씨는 김해 지역에서 국군을 도와주는 보급대 일을 하였으며, 보훈처 기록에 의하면 둘째 동생 박기준은 애국단원으로서 공비와 교전 중 전사(보훈처 기록에는 1950. 9월로 되어 있으나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음)한 것으로 되어 있음.

-군인 간 오라버니는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지금으로선 명확히 밝힐 길이 없으나 박경운의 여동생(말순)의 입장에서는 두 오빠가 국군을 돕는 보급대와 애국단에서 활동했으니 군인으로 여겼거나 군대 갔다고 말할 수는 있었을 것임.

셋째. 대산에 장터가 생기지 않았다는 이견

-귀 연구소에서 제출한 첨부서류 중 대산공설시장(대산면 구혜리 224-33)1910년에 개시되었다는 내용이 있음.

-평림시장도 있었다는 자료 있음.

넷째. 이필남 씨가 처녀뱃사공이라는 의견

-2008년 함안군에서 이필남 할머니를 만나 확인한 내용으로는 1953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과 단둘이 살았는데 다음 해인 1954년 겨울에 남지장에서 의령장으로 가는 일행을 서너 번 정도 배를 태워준 적이 있고, 그 일행은 20대 청년 두 명을 포함하여 모두 네 명이었는데 세 명만 올 때도 있었다고 하고

-앵금(해금)으로 추정되는 악기를 소장하고 있었다고 증언 함.

2008. 9. 10 이필남 씨와의 대화 내용 동영상 보관 중

-윤부길 선생의 악극단 규모는 코미디언 배삼룡 선생이 남긴 기록과 당시 일행 중 한 사람인 별명이 점백이인 밴드마스터 증언 등에 의하면 악극단의 인원이 20여 명 정도였고 가족도 함께 이동하여 인원이 많았다고 함.

-당시 악양나루(현재 악양루 가든 자리)에는 방 3개가 있었다고 하며, 나누어 숙박을 하였다고 증언함.

-윤부길 악단에는 앵금(해금)이라는 악기가 없었다고도 함.

-이필남 씨 본인의 증언 및 여러 증언 정황상 뱃사공을 하였지만 윤부길 악단을 만난 뱃사공은 아님

다섯째. 인터넷에 개제한 홍보물(애니메이션 등) 내용도 허구 및 오류 수정 요구

-의령 향토문화연구소 확인 결과 현재 허구나 오류를 확인한 것이 아니고 그런 내용이 있으면 수정해 달라는 뜻이라고 답변 받음.

대체로 문헌적 증거가 없는 사실은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제반상황이 얼마나 사실과 일치하느냐를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함.

위에서 말한 배삼룡 선생, 악극단 일원, 처녀뱃사공을 불렀던 고 황정자 선생 아들의 증언, 이필남 씨 증언 등 제반상황이 의령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함안이 더 사실과 일치한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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