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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문화이해교육

시민기자 이경옥

기사입력 2014-05-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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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7일 함안문화원에서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의 상호문화이해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대충하고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다. 날씨는 그날따라 유달리 추웠다.

다문화 교육 별로 재미없던데….

그저 그런 교육이려니 생각하며 별 기대 없이 교육장에 들어섰다.

날씨는 춥고, 히터는 틀었는지 말았는지 계속 찬바람만 나오고, 거기다 10시부터 교육이라 했는데 군민들의 자질을 의심했는지 10시 30분부터 교육을 시작하겠다는 사회자님 말씀에 쓴웃음을 지었다.

10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얼마나 바삐 서둘렀는데, 늦지 않으려고 집안일도 대충 마무리하며 눈썹 휘날리게 뛰어 왔건만….

교육장에서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옆에 계시는 장학사님 말씀이 다문화 교육에 대해서는 아주 강의를 잘하시는 분이란다. 모시기 힘든 분이시라는 말씀과 함께….

교수님은 다문화 가정(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단어로 바꾸었으면 한다. 이 단어 속에서 부정적인 어감과 차별이 느껴진다)의 부모와 자녀들에게의 교육보다는 일반인들의 교육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학교의 교실에는 한 명의 다문화 가정 자녀가 있다. 이 아이는 말로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서툴다.

한 명의 아이주변에 다수의 아이들이 둘러서서 따지고 있다. 이 한명의 아이는 말로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가슴을 치며 공격적으로 변하며 싸움을 한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아이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할 말이 많다. 내가 말이 서툴러서 너희들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기가 힘드니깐 너희들이 이해를 좀 해야 한다고 했더니 한 아이가 “얘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우리랑 똑같이 태어났는데 왜 한국말을 못해요?”한다. 아이들다운 단순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는다. 그러면서 너희들과는 또 다른 환경이라고 자세히 얘기를 해줬다. 아이들의 의식 속에도 다문화 가정에 대해 불편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게 보인다.

우리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의 자녀는 색안경을 쓰고 그들을 바라본다. 무시하고 함부로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백인들보다도 더 흑인을 무시하고 싫어한다고 한다.

흑인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영미권 영화의 영향이 크다. 60〜70년대의 영화를 보면 납득이 된다. 내가 기억하는 영화에서도 항상 흑인은 노예나. 범인으로 출연했으니까.

문화란 이렇게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우리의 정신 속에 소리 없이 습득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아이들의 의식 속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건 어른들이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다문화 교육,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1950년대에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군대를 파병한 나라가 태국이며, 장충동 체육관을 무상으로 지어준 나라가 필리핀이라는 사실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에는 180여 개국에서 139만 명의 외국인이 들어와 있고 우리가 살기 힘들 때 이민을 떠난 사람이 632만 명이었다. 이민자들이 더 많은 우리나라였다.

그들이 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야 했을 힘든 시기를 생각하자. 우리가 못 살고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살 때 떠난 그들이 받은 설움을 우리가 지금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하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외국인 유입은 한국사회의 결함 때문이다. 60〜70년대의 농촌 노총각 문제. 80년대에는 중소기업의 구인란 · 저 출산도 외국인을 유입하는 요인이다.

외국인 결혼이민자가 없었다면 농촌은 피폐해졌을 것이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특히 3D업종의 기업들은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함을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50여개의 다른 종교와 종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교 싸움이 없는 우리나라를 외국에서는 연구대상이라 한다.

그것은 기층을 잡은 종교가 포용력을 가진 불교였기에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그 말에 공감한다.

자신들의 종교가 유일신이라는 기독교가 기층을 가지고 있었다면 불교가 지금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세(勢)만큼의 기층을 잡도록 놔두었을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외세의 침입도 많았고, 조선말기의 쇄국정책이전에는 이민자들에 대해 관대함을 보여 주었다.

귀화해도 그들의 문화를 포용하고 안아주었기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더불어 같이 융화되어 살아왔다. 우리역사 자체가 다문화임을 인정하고 우리 자녀들이 자라서 그들과 한껏 융화되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30년쯤 후에는 다문화가정이 9.2%에 달한다고 한다. 그때 소수의 그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때 우리 자녀들과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서로 어우러져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이경옥 기자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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