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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7-29 19:09

“6·25 전사 3형제 부모님 곁에 모셔주오”

대산 옥렬리 3형제, 6·25전쟁서 전사 뒤늦게 확인

기사입력 2021-06-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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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6·25전쟁 발발 71년 만에 한 가정의 3형제가 전사한 사실이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전사자 3형제의 부 김기태(1880년생) 씨와 모 이말선(1890년생) 씨는 슬하에 62녀를 두었다.

하지만 6·25전쟁은 3형제를 전쟁터로 불러들였다.

장남 김영주 씨는 국방경비대 근무 중에 6·25전쟁에 참가했으며, 차남 김영희 씨는 어디에서 어떻게 군에 갔는지는 모르며, 삼남 김영달 씨는 피난지 김해에서 군에 입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남보훈지청으로 받은 국가유공증서

이에 장남 김영수 씨는 19501013일 전사했으며, 차남 김영희 씨는 1950930일 전사, 3남 김영달 씨는 19501023일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전쟁으로 인하여 3형제가 전쟁터에서 한 달 안에 모두 전사하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함안군 대산면 옥렬 2101번지에 거주하는 김영주 씨의 막냇동생 김영조(38년생. 84, 처 안붕돌. 40년생) 씨에 따르면 6·25 때 전사한 형님 세분의 위패를 고향 부모님 산소 옆에 모시는 것이 평소 소원이라고 말해왔다고 했다.

김영조 씨는 배재성 군의원, 군청 담당 공무원 등과 같이 경남 보훈지청을 찾아가 사망자 3명의 신원을 확인해 본 결과, 자신이 그렇게 찾고 있는 세분의 형님으로 밝혀졌다.

국방부 확인 결과 맏형 김영주 씨는 강원도 15사단에서 복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막냇동생 김영조 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께서 김해지역으로 피난을 갔는데, 피난처에서 김영희, 김영달 두 형제는 군에서 강제 징집을 당했다고 말했다.

국방 경비대에 근무 중이던 큰형과 둘째, 셋째 형은 나라를 위해 전사를 당하고도 고향으로 전사(戰士)통보만 보내왔다고 했으며, 유해를 찾지 못한 부모님은 죽을 때까지 죄인이 된 마음으로 힘들게 살았다고 말했다.

한 가정 3형제가 6·25전쟁에서 전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후 전몰군경, 국가 유공자로 인정됐다.

그러나 김영희, 김영달 형제는 1978년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큰형 김영주 씨의 배우자가 2012년 사망함에 따라 보훈가족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로 인해 보훈처에서도 3형제 가족 관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냇동생 김영조 씨는 형님 세분의 위패를 부모님 산소 옆에 모셔야겠다는 일념으로 경남동부보훈지청을 혼자 방문하거나 또는 배재성 군의원과 같이 방문했다.

그 결과 김영주, 영희, 영달 씨가 한 가정 3형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보훈지청은 김영조 씨에게 자택으로 3형제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가지고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국가유공자증서 수여와 함안군수의 감사패 수여

이를 알게 된 배재성 군의원은 위대한 참전 유공자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가정집에서 받는 것보다는 군청 군수실에서 수여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따라서 지난 68일 군청 함안군수실에서 보훈지청 관계자로부터 막냇동생 김영조 씨가 3형제의 국가 유공자 증서를 받았으며, 조근제 함안군수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그러나 김영조 씨는 취재진 앞에서 흐느껴 울면서 탄식 섞인 호소를 했다.

백척간두에 놓인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영혼을 위해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줬나?’

청춘의 보상을 못해줄지언정 3형제의 위패라도 부모님 곁에 모셔주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며 흐느껴 울었다.

김영조 씨는 국가의 불균형 보훈 정책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도 했다.

보다 민원이 무섭고 밥 타령, 반찬 투정!

옛날 군인들은 상상도 못했을 이 지경을 호국 영령들은 하늘에서 뭐라고 할까요? 라며 말하고 있다.

오로지 막냇동생 김영조 씨의 바람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3형제의 위패를 부모님 곁으로 모시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나라가 있기에 우리가 지금 존재하듯이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한 집안의 3형제처럼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순국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나라가 존재 한다면서 호국보훈의 달에 희박해져가는 애국정신을 다질 수 있고, 분명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더함안신문 (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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