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함안군 참전용사 회고록-31

전용개(1930년생) 지내시는곳 : 법수면 대법로

  ▶전용개

일본 하시모토에서 태어난 나는 아버지를 여섯 살 때 여의고 어머니, 동생과 함께 큰집이 있던 부산으로 이사왔다. 이른 봄이었던가? 껍질도 제대로 벗기지 않은 보리를 절구에 부숴 멀건 보리죽을 쑤어 끼니를 때우고는 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남편이 없는 집에서 두 자식을 건사하기가 힘에 부쳤다. 열다섯 살 때 일본인이 운영하는 전구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얼마간의 월급도 받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곳에서 일하다 기계에 팔을 다쳐 골절되는 바람에 도립병원에 입원했다가 2~3 개윌 가량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함안에 있는 외갓집 근처로 이사를 왔고 유현 봉산마을에서 살았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6·25전쟁이 났고 우리 가족은 김해로 피난을 갔다. 영장이 나왔는지 지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입대하게 됐다.

부산 초량에 위치한 부산진 15대대 훈련소에서 15일 동안 훈련을 받았다. 사격장에서 총 쏘는 연습을 했고, 총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어지간하면 실탄을 지급했다.

행군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부산 시내에 총동원령이 내려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 때문에 1·4후퇴를 하게 됐다. 그 바람에 서울까지 가지 못하고 서울 밑에서 전투를 치르게 됐다. 물을 수통에 담고, 담요를 둘둘 말아 배낭에 매고,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1,600고지를 점령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전우들이 죽고, 부상을 당한 전우들도 있었지만 위생

병이 없어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산을 오르려던 2개 사단이 절단났다. 1,700고지의 다른 산을 점령하려고 할 때였다. 2사단 31연대 소대장이 수색조를 30명 모집한다고 했다. 열흘이 넘도록 밥을 먹을 수가 있나! 한 달이 가도 잠을 잘 수가 있나! 풀과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던 시간.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듯 싶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5명씩 6조로 수색조가 만들어졌고 동서남북으로 배치됐다. 우리 조는 북쪽으로 갔는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에 더듬고 기어서 수색을 했다. 새벽이 오고 산에 해가 비치자 중공군이 우리 사단의 2~3배는 넘어보였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우리 조의 4명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아 본대에 합류했는데 후퇴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소대장은 다른 수색조를 기다려보자고 했고 2시간을 기다려도 다른 수색조들의 소식이 없자 그제야 100리 후퇴를 명령했다.

주력 부대인 우리는 호를 파고 2명씩 대기하기로 했다. 호를 채 다 파기도 전에 비가 와서 천막을 치는 도중에 총탄이 날아들어 천막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갈이 찢어졌다.

밤이 되자 조명탄이 터지고 비행기 소리가 들리며 포탄이 날아들었다. 전진 명령에 한 발을 떼는 순간 같은 조원이었던 안신태가 기관총 탄에 맞아 ‘악’ 소리도 못하고 죽었다. 전우의 죽음 앞에서 나는 “너 잘 죽었다. 나도 오늘 죽을랑가? 내일 죽을랑가?”하며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시 후퇴 명령이 떨어져 전우의 시체를 대충 묻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다른 산에서 방어를 할 때였다. 척후병으로 숨어 있다가 무엇인가 움직이는 순간 적인 줄 알고 총을 쐈는데 노루였다. “다른사람 다 죽인다!”며 중대장, 소대장이 위협했다. 적에게 아군의 위치를 알려주는 중대한 과오는 바로 총살감이었는데 세운 전공이 있어서 다행히 살아남았다.

육박전이 벌어진 1,700고지 이북의 산에서의 일이다. 바로 앞에서 전우들이 많이 죽었다. 그중에 형과 동생이 함께 전쟁에 참가했는지 죽은 형의 시체를 끌어안고 “형아, 형아.”하며 우는 모습을 보는데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 잠깐 시간이 지나고 소대장이 담배와 물이 있으면 다 내놔라고 했다. 꽁초를 한 사람당 반 모금씩 들이 마시고 나자 일본말로 돌격을 외쳤다. “돌격!” 나는 수류탄 2개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한두 발 떼는 순간 호를 판 곳에 엎어졌다. 수류탄을 빼서 던졌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려보니 곰보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온몸에 파편자국이 있었다. 설상가상 기관단총에 다리에도 두 방을 맞았다. 기어서 산 아래로 내려오니 군용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충 응급처치를 하고 가로로 칸막이가 있어 마치 도시락을 연상시키는 병상의 트럭에 실려 대구 276육군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제대하고 오던 날이 함안 장날이었던 모양이다. 외가 사람이 ‘느그 엄마가 너 살아오라고 샘가 옆에서 물 떠놓고 얼마나 빌었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느그 엄마 정성으로 네가 살아 온 거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수색조가 되어 혼자 살아남았을 때 소대장이 집안에 믿는 사람이 있느냐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그 때는 흘려들었었는데 제대를 하고 보니 내가 살아온 것이 다 어머니의 정성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죽을 각오로 지킨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부국이되어 기쁘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대손손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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