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함안군 참전용사 회고록-21

음옥배(1946년생) 지내시는곳 : 가야읍 말산1길

  ▶음옥배

함안 가야 말산리 본동 426번지에서 출생했다. 5남 중 둘째다. 부친이 직조공장(시마지 공장-베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셔서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다.

나는 1966년 8월 16일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중, 중대장이 중대원들을 모아놓고 월남 전투에 지원할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혼자 손을들어 신청하니까 가면 죽는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물었다. 한국에서 3년 동안 군대생활을 하는 것보다 좀 위험하지만 월남전에 참전하고 싶었다. 월남 지원 충원이 군대생활 2년 후에 내려왔다.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훈련장에서 한 달 간 파병 교육을 받고 1968년 8월 16일 부산 부두를 출발해 8월 24일 베트남 나트랑항구에 도착했다. 8월 31일, 주월 미군 최대의 보급기지 캄란베이의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백마 30연대 2대대 6중대로 배치됐다. 베트남에 대한 첫인상은 과연 내가 여기에서 1년 동안 버텨 귀국할 수 있을지 의구심부터 들었다. 고참병으로서 생활의 불편함은 없었다. 나는 중대장의 무전병이었다. 1년 중 7~8개월만 작전에 투입돼 전투가 있었다. 여러 가지 작전 중 1968년 12월 16일부터 9일 간 계속된 승마 15호 베트콩 소탕작전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1968년 12월 21일 오전 10시 30분에 중대장 이민엽(당시나이 28세)대위가 작전 중 전사했다. 분대장 황창호·김차삼 하사도 함께 희생됐다.

12월 16일 승마 15호 작전이 시작됐다. 대대장이 중대를 방문해 작전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격려해 주었다. 이 작전은 바콤 베이스에서 벌이는 한판의 대대작전이었다. 이 지역은 2년 전 동보 베이스에서 벌인 사단 규모의 작전인 백마 9호 때 도망친 vc(베트콩)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정보가 있는 곳이었다.

20일 밤, 우리가 매복한 곳은 월남에서 처음 보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는 산기슭이었다. 12월 21일 오전 6시에 기상해 작전 수행 중, 7시 30분 경 전방 200m 앞에서 vc 5~6명이 아침식사로 옥수수를 구워 먹고 있다는 무전이 1소대에서 중대 무전병인 내게로 왔다. 이를 즉시 중대장에게 보고하면서 사살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니 중대장이 좀 더 가까이 접근해서 다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가 “중대장님, 더 접근하면 도망칠 위험이 있습니다.”고 이야기했으나 중대장은 이를 무시하고 더 접근하라는 무전을 각 소대에 전달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 1~2분이 경과된 뒤 옥수수를 먹던 베트콩 5~6명이 사라졌다는 무전이 날아왔다. 중대장에게 이를 보고하니 중대장은 지금부터 수색작전에 들어간다고 지시했다. 약 3시간 동안

그 주위를 탐색해도 베트콩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침식사 C-Ration(미군전투식량)을 먹으라고 각 소대에 지시를 한 후

중대장과 식사를 하려다 말고 내가 “현재 위치(좌표)를 알려놓고 C-Ration을 먹어야 되지 않습니까?”하니 중대장도 “맞다. 우리 위치를 따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후방에 있는포 부대에 지원사격을 요청하려면 현재의 우리 위치를 알려줘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포탄이 아군 진지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글이 너무 울창하기 때문에 위치를 확인하려면 가까운 산이나 주변 지형을 먼저 확인해야 했으므로 중대장은 자꾸만 앞으로 나갔다. 이 때 베트콩이 쏜 AK소총 3발의 총성과 함께 총알이 중대장의 가슴을 관통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전사하고 말았다.

각 소대 무전기는 중대 무전기 담당인 내게 연락되고 내 무전기는 대대에 연락되고 있었다. 총소리를 들은 대대본부의 대대장이 내게 무전으로 무슨 총소리냐고 묻기에 “중대장이 사망한것 같습니다.”라고 보고 했다. 대대장이 가까운 곳의 소대장을 바꿔 달라고 했지만 소대장

이 100m 후방에 있기에 바꿀 수 없다고 하니 관등성명을 대라고 해서 “병장 음옥배”라고 대답했다. 대대장은 “지금부터 병장 음옥배를 중대장에 임한다.”고 말했다.

적군이 전방 몇m 정도에 몇 명이 있느냐고 묻기에 2~3명 정도가 10m 전방의 큰 나무 뒤에 있다고 보고했다. 일단 중대장이 사망했는지 아닌지 위생병과 전령을 불러서 확인하라고 지시하기에 불렀는데 위생병이 중대장의 사망상태를 살피다 총알이 날아와 부상을 당했고 전령도 그 옆에서 다리에 총상을입었다. 내 주위에는 개미무덤(몸을 가릴 수 있는 은폐물)이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나는 살 수가 있었다.

전방 10m 앞에 베트콩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나무가 너무커서 그 뒤에 숨어있는 베트콩을 소총으로 사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탄발사기 사수를 내 옆으로 오라고 명령을 내렸는데도 도착함과 동시에 베트콩에게 총을 맞아 관통상을 당해 내옆에 눕고 말았다. 할 수 없이 100m 뒤에 있는 소대장을 보고 앞으로 전진하라고 지시하니 1소대장은 1분대장에게 전진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분대장도 일어서자마자 적 총탄에 사망했다. 그래서 2소대장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리니 2소대 1분대장도 똑같이 전사하고 말았다. 각 소대를 포함해서 모두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나도 일어서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내가 베트콩을 사살하지 않으면 이 작전을 끝낼 수가 없었다. 먼저 유탄발사기로 적군이 있는 곳에 10여 발을 쏘았다. 그 다음 각 소대장에게 내가 직접 들어갈 테니까 엄호해 달라고 요청하고 적군 쪽으로 뛰어갔다. 적군을 사살하고 AK총 1정을 노획한 후 대대본부로 철수를 했다. 철수를 하니 대대장이 나를 불러 단기병인지, 장기병인지를 물었다. 단기병이라고 대답하니까 훈장을 받아도 사회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면서 개죽음을 당한 중대장 이민엽이 1계급 특진할 수 있도록 AK소총을 중대장이 노획한 것으로 하자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후 중대장은 1계급 특진하여 ‘고 이민엽 소령’이 됐다. 나는 무전병 의무를 충실히 했다는 것으로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월남전은 전면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대장이 죽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좌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중대장이 중대를 이탈하면서 전사하고 만 것이다.

AK총 1정을 노획한 후 사실상 우리 중대는 전투를 더 이상 할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됐다. 대대에서 5중대를 현재 우리의 위치에 배치시켰다. 다음 날 6중대의 우리 부대는 작전을 철수하고 대대본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23일 하루가 지나고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대대장의 명령이 하달됐는데 중대장도 버리고 온 주제라며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술도 마시지 못하고 쓸쓸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전쟁 중 고향에 대한 생각도 많이 떠올랐다. 내가 부모님께 연락도 안 드리고 월남으로 자원을 했기 때문에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니 그때서야 월남에 간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졌다.

제대 후 1970년도에 교통본부 총무과에 1년 정도 근무를 했다. 그 뒤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다가 1989년 경남일보 사회부기자로 발령받았다. 현재는 경남매일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군 2대 주월 사령관이었던 이세호 대장(예편)은 안보강연회에서 정부가 미군 측으로부터 병장 기준 1인당 500불을 받아서 1/10인 50불만 봉급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귀속해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기간산업 확충을 위해 썼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월남전 파병으로 인한 국익증진에 대한 올바른평가가 재조명돼야 함은 물론 이들의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 등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실상 월남 파병, 독일에 파견한 광부와 간호사가 해외에서 벌어들인 종자돈으로 국가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으니 후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선조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바란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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