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함안군 참전용사 회고록-20

안 종(1929년생) 지내시는곳 : 대산면 기동길

  ▶안  종


나는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께 일본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며 7살 때 함안군 가야읍으로 이사를 왔다. 21살까지 가야읍 신음리 도음부락에서 살았다. 4년여의 군생활을 마치고 27세에 결혼해서 딸 셋과 아들 둘을 두었다. 자식들은 모두 타지에 있고 7년 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서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로 거주하고 있다. 친손자가 9명이나 된다.

6·25전쟁이 나고 함안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을 때 김해 가락국민학교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입대를 해 부산 동래 조방터에서 일주일 간 훈련을 받고 경주에 있는 수도사단 특공대에 배속되어 안강전투에 참여했다. 겨우 총만 쏠 줄 아는 상태로 전투에 바로 투입되서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해 우리는 경북 경주 위에 있는 지역인 안강으로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됐다. 1개 중대 160여 명이 있었는데 많은 전우가 죽으며 전투가 아주 치열하게 치러졌다. 동해 전선으로 북진을하고 38선을 넘어 인민군 1사단과 싸웠다.

함경북도 흥남부두에 있는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부둣가에는 일본사람들이 파 놓은 땅굴이 많았다. 거기에서 아주 잔인한 광경을 목격했다. 굴에 공산주의 사상을 반대하는 민간인들을 천여 명이나 가둬 놓았다가 인민군이 사과밭으로 끌고 가서 모두 총살시켰다. 산더미같이 시체가 쌓여 있었는데 혹시나 산 사람이 있을까 시체 더미를 뒤지고 다녔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비행기에서 폭격을 하고 민간인이 피난 가는 무리 속에 패잔병이 섞여 있었다. 패잔병을 찾아서 사단으로 내려 보내는 일을 했다.

성진을 거쳐 함경남도 영흥군을 지나고 북천시까지 전진하며 땅굴을 파고 숨어있던, 아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사단으로 내려 보냈고 길주군에서는 산골짜기에서 빨치산으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약 한 달 간 머물렀다.

2차 후퇴 때 성진 부두에서 미국 배를 타고 피난민을 후송했다. 우리는 흥남부두에서 내렸고 민간인들은 어디에서 내렸는지 모른다. 흥남부두에는 유엔군 기지창이 있었다. 그곳에는 식량과 무기를 저장해 두었는데 혹시 인민군에 도움이 될지 몰라서 1·4후퇴 때 우리 부대 160명이 흩어져 헬기에서 기름을 뿌린 후 불을 질러 모두 태워버렸다.

흥남에서 배를 타고 경북 죽변항까지 왔다. 거기서부터 걸어서 후퇴를 했다. 나는 수도사단 기함연대에 배속됐는데 문서 연락병 임무를 맡고 있었다. 대대에서 중대로 암호를 보내거나 문서나 서한을 보내는 일을 했다. 설악산 행두봉 1800M 고지에서 두어 달 있었다. 금강산을 마주보는 월계산에도 있었다. 서부전선에는 가 보지 않았지만 동부전선을 오르내리며 싸웠다. 사나흘 굶는 것은 예사였고 나물이나 풀을 뜯어 먹고 버티었다. 비행기에서 보급품을 떨어뜨리면 바람이 불어 인민군 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배고픔이 심했다. 그 때 같이 석로굴을 빠져나오다가 혈곡사람 강석도와 김해사람 장태만이 전사해서 대대에서 화장해 집으로 보내주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남초고지 전투에서 부상당했다. 대대700여 명이 몇 겹으로 고지를 에워싸도 몇 사람 살아남지 못하고 거의 다 죽어나갔다. 겨우 네다섯명 정도 살아나왔다. 매일 보충인력이 지원되어도 같은 상황이었다. 호를 파서 네 명이 들어가 몸을 숙이고 있는데 머리 위로 포가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철모가 구멍이 날 정도로 위력이 강했는데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또 눈에 파편을 맞은 적도 있다. 야전병원으로 후송됐는데 동기들은 팔 다리가 잘려나간 사람이 많아서 눈에 파편이 박힌 것은 경상자로 취급받아 별다른 치료를 못 받았다.

아주 급박한 상황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서울 36분대로와서 지내다가 제대한 후에 파편은 눈동자에 살이 차면서 저절로 빠져나왔다.

지리산 토벌에도 참가했다. 하동의 1개 면을 포위해 하루에 2400명을 체포해 진주형무소에 보냈다. 빨치산과 민간인들이섞여 있었다. 채석봉 근처에서는 날이 엄청나게 추웠다. 언 발을 녹이려고 불에 발을 갖다댄 군인들은 바로 동상에 걸렸다.

무주 구천동에서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를 포로로 잡아서 사단으로 내려 보냈다. 그 때 지리산을 많이 오르내렸다.

무궁화랑훈장을 신청해두었는데 부상을 당해 육군수도병원으로 이송돼 있다가 제대하며 못 받았다. 면사무소가 불타는 바람에 호적이 사라져 다시 만들면서 아버지가 이름을 안철상에서 안종으로 등록을 했다. 이름이 바뀌는 바람에 육군본부에 연락해 훈장을 알아봤지만 기록이 없다고 한다.

보충대로 갔다가 휴전이 되고 1사단 1연대에서 1년 정도 있다가 제대 명령이 떨어졌는데 대대에서 안 보내줘서 더 복무했다. 1사단장 표창장도 받았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잃어버린 것같다. 4년 8개월만에 제대를 했다.

군 제대 후에 마을 동장을 10년 정도 하며 군수, 도지사로부터 표창장과 감사패를 많이 받았다. 마을에 새마을 창고를 지을때 벽돌을 하나하나 올려가며 일을 했다.

함안군에서 대산면이 유공자 협의회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초대 총무를 맡아 인원을 파악하고 102명의 참전유공자 명부를 만들었다.

군은 기강이 살아야하는데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시대가 좋아져 군인의 대우가 아주 좋아서 우리와 비교해보면 군인 같지도않다. 다친 것은 미약해 상이군인이 되지는 않는다. 참전유공자로 보훈처와 함안군에서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 내가 전쟁터에서 살아 온 것은 하늘이 도운 것 같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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