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함안군 참전용사 회고록-19

안석무(1930년생) 지내시는곳 : 가야읍 가야 5길

  ▶안석무

고향은 가야읍 가야동이고 부모님 슬하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고 당시 부모님은 머슴 두 사람을 데리고 농사를 많이 지으셨다. 살림살이는 중류 정도는 됐다. 지금은 가야읍 중동에 살고 있다. 군대 가기 전 21살에 결혼해서 3남 2녀를 두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8월, 피난 가서 21살에 군에 입대했다. 당시 함안에서는 양산, 김해로 피난을 많이 갔는데 8월초순에 여항산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김해로 피난을 갔다. 당시 징집이 아니라 갈만한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동원령으로 500명쯤이 할당되어 피난민 수용소를 덮쳐서 잡아갔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잡혀서 김해에서 8월 21일에 군 입대를 했다

6·25전쟁 당시 UN군은 K군번을 썼는데 111-114번까지 있었다. K114번으로 구포, 김해 대동국민학교에서 한 달 간 훈련을 받고 부산공무원교육원에 있던 포로수용소에 배치됐다가 다시 수영에 있던 포로경비대대에 배치됐다. 1·4 후퇴 때는 광안리에서 거제도수용소를 거쳐 대구 달성국민학교에 있던 헌병학교에서 약 2개월 간 훈련을 받다가 수복되기 전에 수원으로 갔다. 휴전이 될 무렵에는 서울 제3헌병대대에서 근무했다. 화천, 원주, 영등포가 관할부대였다.

나는 실질적으로 소총을 메고 인민군과 전쟁은 거의 하지 않았고 당시 헌병군으로 활동했다. 헌병군의 역할은 치안과 교통정리였다. 또, 접전할 때 명령 없이 내려오는 병사들을 다시 올려 보내고 배치시키는 일도 했다. 한 사람이 내려오면 괜찮은데 여러 명이 몰려서 내려오면 모두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했다. 보급로 확보를 위한 정비, 전방에서 부상 입은 병사들을 무사히 후방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

무단이탈과 후방에 나가서 품위손상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지도했다. 여러 부대를 옮겨 다녔으나 업무는 같았다.

당시는 만기제대가 없었고 휴전 이후에야 생겼는데 군 복무가 3년임에도 휴전이 될 때까지 5~6년 간 복무했다.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은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으며 지냈다.

전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적진에 나가 총 들고 싸운 사람뿐만 아니라 뒤에서 활동한 위생병, 행정병 모두 함께 싸운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건상 인원이 많아서 2~3년 간은 정당한 보수도 받지 못한 채 군대 생활을 했다. 군인들이 휴가를 나오면 용산역에서 군용열차를 탔는데 밤이 되면 보안상 불을 꺼야 했고, 자리가 빽빽하게 차서 짐칸에도 누워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당시는 다른 것보다 무조건 살고보자는 마음만 있었다. 38선 이북으로는 동두천, 포천까지 가봤다. 당시 주민들은 군인들에게 밥을 해주면 덕을 볼지, 화를 입을지 몰라서 밥을 안해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참전용사로서 국가에 바라는 점이 있다. 참전용사지만 처음에는 예우가 없었다가 나중에 5만 원을 지원해줬고 인상요구를 하다 보니 12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전투 실전에 참가해서 무공수훈장을 받은 사람과 6만 원의 차이가 난다. 최저생계비의 50%라도 지원해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앙회에서 시군지회에 지원하는 금액이 무공수훈장을 받은 사람은

19만 원이고 우리는 10만 원으로 차별이 있다. 사단에 전투 유공이 있으면 사단소속 군인은 행정병, 취사병상관 없이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 유공과 상관없이 배치를 잘 받고 못 받고의 문제다.

지금은 보훈처에서 17만 원과 함안군에서 명예수당으로 10만 원을 받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받는 금액이 55만 원인데 그 절반이라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보니 복무한 사람이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여타다른 유공자와 달리 예우해준다.

우리 군에는 참전용사가 원래 457명인데 현재 202명이 생존해 있다. 그 중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사람은 100명 남짓하다. 나머지는 거동이 힘들어 집이나 요양원에 누워 있다. 현재 참전용사들의 나이가 82세에서 90세에 달한다. 앞으로 길어야 5년이면 6·25전쟁 참전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날 텐데 그동안이라도 예우를 잘 해줬으면 한다.

후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안보의식을 철저히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6·25전쟁을 전교조나 종북세력 등이 북침으로 운운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6·25를 너무나도 모르는 어불성설이다. 이런 생각을 경계하고 국가관을 확실히 가졌으면 한다.

아내는 이름이 이경호인데 21살 섣달에 시집을 왔다. 이듬해에 6·25전쟁이 났는데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근근이 생활했다. 친정집 식구와 김해로 피난을 갔는데 피난을 갔다 오니 집이 불타서 제실에서 살았다. 당시 큰형님도 군에 입대를 해서 큰동서와 같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시집살이가 고추보다 더 매웠다고 한다.

내가 7년 동안 군대에 있다가 제대해 왔는데 큰형님은 군대에서 돌아가시고 지금도 유골을 못 찾고 있다. 내가 제대해 왔지만 어른들이 따로 살림을 차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3년을 더있다가 광복동에서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결국 10년 동안 시집을 산 셈이다.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정말 감사하고 오랫동안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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