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양력설과 음력설

  ▶김기표 교수

2016년 새해가 밝아왔다. 올해는 간지(干支) 상으로 병신년(丙申年)이다. 병(丙)은 붉은색, 신(申)은 원숭이를 뜻하므로 붉은 원숭이의 해가 된다. 우리는 관행적으로 양력 1월 1일이 되면 그해의 간지에 맞추어 병신년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2016년 2월 8일(음력 1월 1일)이 되어야 병신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간지 상의 개념은 양력(陽曆. 太陽曆이라고도 한다)이 아니라 음력(陰曆. 太陰曆이라고도 한다)으로 따지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양력을 사용하면서도 띠를 나타내는 간지(干支)나 생일 등 실제 생활에서는 음력을 많이 사용하는 전통이 뒤섞여 나타나는 결과이다.

2016년은 우리나라가 양력을 공식적인 국가 역법(曆法)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 꼭 120년째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역법을 수입해 사용한 이래 오랫동안 음력을 국가의 책력(冊曆)으로 사용해 왔다. 조선 효종 때 이르러 시헌력(時憲曆)이라는 책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음력을 개선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96년부터였다. 당시 고종임금은 1895년 11월 17일(음력)을 기해 음력을 폐지하고 국가의 공식 역법(曆法)으로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이날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삼는다는 조칙을 공포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고종은 조선 개국(開國) 504년 음력 9월 9일(양력으로는 1895년 10월 26일)에 조칙을 내려 "정삭(正朔)을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쓰되 개국(開國) 504년 11월 17일을 505년 1월 1일로 삼으라."고 했다. 이에 따라 1895년 11월 17일이 1896년 1월 1일이 됨으로써 국가문서에서 44일간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1896년 이후 관보(官報)는 물론 독립신문, 황성신문 등도 날짜를 양력으로 표기했다. 반면에 승정원일기(承政院 日記)와 일성록(日省錄)은 음력을 유지했고 당시 중요한 국경일이던 조선왕조 개국기원절(음력 7월 16일), 고종의 생일인 만수성절(萬壽聖節. 음력 7월 25일)과 고종 즉위일(興慶節, 음력 12월 13일) 등도 음력을 그대로 사용했다. 5백 년 넘게 음력으로 모시던 개국기원절이나 왕의 생일 같은 경축일을 갑자기 양력으로 바꿀 수 없었다.

 

1895년 8월 을미 사변으로 정권을 잡은 개화당 김홍집 내각은 여러 가지 내정개혁을 추진하면서 1896년 1월 1일 양력 사용과 함께 건양(建陽)이라는 새로운 연호(年號)를 제정하여 쓰기 시작했다. 조선 건국 이래 계속 사용해 온 중국의 연호는 이날로 음력 역법(陰曆曆法)과 함께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조선 개국 이래 5백 년간 조선왕조실록이나 왕의 교지(敎旨) 등 국가문서에 중국 연호를 사용해 오던 것을 폐지하고 건양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조선이 청나라와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립국을 지향한다는 것을 국내외에 공포한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력사용은 친일내각이었던 김홍집 내각이 단발령 등의 개혁조치와 함께 시행됨으로써 백성들의 큰 반발을 초래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오늘날 대다수 국가가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태양의 운행주기에 기반을 둔 율리우스력을 1582년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수정한 역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1872년에 양력을 도입한 이후 현재는 양력 사용이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 이스라엘, 이슬람국가 등은 사정이 좀 다르다. 중국은 1912년 양력을 도입했는데 아직도 양력 1월 1일 하루만 쉬고 음력설은 춘절(春節)이라고 하여 수일간을 연휴로 지정하여 명절로 쉬는 등 음력설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유대인의 역법(曆法)은 기본적으로는 음력을 사용하면서 일부 필요한 사항은 양력으로 조절하는 양력과 음력을 혼합한 체계를 사용한다. 이슬람 역법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순수하게 음력만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력은 음력을 사용하면서 윤달이 없으므로 1년이 354일이나 355일이 된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월을 말하는데 금식 기간(禁食期間)인 라마단 월이나 개인의 생일은 양력으로는 매년 10일 정도씩 앞당겨져 한겨울이 되기도 하고 한여름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896년 양력을 채택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양력을 국가의 공식 역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새해의 시작인 설이 음력설에서 양력설로 바뀐 것이다. 양력 사용에 따라 새해도 양력 1월 1일에 맞추어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양력설은 120년이 지난 지금도 정착되지 않고 음력설에 밀려나고 말았다. 조선 말기에 양력을 사용하고 양력설을 지내라고 했지만, 민간은 물론이고 궁중에서도 하루아침에 음력설을 없애고 양력설을 지낼 수 없었다. 당시 벼슬아치나 민간인들이 음력을 여전히 사용하고 양력설은 ‘서양설’ 또는 ‘개화설’이라 부르면서 설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양력설을 쇠도록 강요했지만, 대다수 백성은 전통적인 음력설을 계속 지내왔다.

 

해방 이후 1948년부터 이승만 정부는 양력 1월 1일부터 3일까지 공휴일 지정하여 양력설을 장려했고 박정희 정부는 음력설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평일로 만들어 학교수업을 하도록 하고 공무원 근무도 하도록 하면서까지 양력설을 쇠도록 강제했지만 음력설을 쇠는 뿌리 깊은 전통은 없앨 수 없었다. 필자도 어렸을 때 어른들이 양력설을 일본설이라고 부르면서 설로 취급하지도 않는 말씀을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전두환 정부 때인 1985년에 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부활시켜 다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후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국민 여론에 따라 음력설이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설날을 전후한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신 양력설(新正) 연휴 3일은 1998년 공휴일을 조정할 때 1월 1일 하루만 공휴일로 축소하여 지정했다. 1986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이중과세를 없애고 양력설을 쇠라는 정부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83.5%가 구정(舊正) 즉 음력설을 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음력설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유서 깊은 축일로 각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양력설과 음력설의 사례는 법과 제도로 아무리 강제해도 민족의 고유 관습과 문화로 정착된 전통은 없애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사한 사례로 박정희 정부 때 관혼상제 관습을 개선하기 위해 법을 만들어 강제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허례허식적인 관혼상제 풍속을 개선하기 위해 1973년 ‘가정의례 준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경조사시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의한 개별고지, 답례품 증여, 경조 기간에 손님에게 주류와 음식물 접대행위를 모두 금지하고 위반하는 경우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은 국민의 전통의식을 반영하지 못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 결국 폐지되었고, 지금은 건전 가정의례 준칙이라는 권장사항만 정하고 벌칙은 모두 삭제한 ‘건전 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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