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6.25전쟁 70주년 기념-미25보병사단의 마산 방어전투 1

가장 길고 치열했던 마산 방어전투

올해는 6.25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멈춰 행사를 하지 못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보다 전후세대가 더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에 ‘마산방어전투’책을 펴낸 역자 배대균(마산 배신경정신과 의원)원장이 오랜 기간 야심차게 준비했으며, 영어된 것을 한글로 번역한 전사(戰史) ‘마산방어전투’ 펴냈다. 이 책은 전쟁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의 증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안지역 곳곳의 전투 상황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우리 지역의 전쟁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보고(寶庫)이다. 이책을 통해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와 경험한 세대에게도 새로운 각오와 교훈을 되새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아서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6.25『마산방어전투』번역서를 펴내며

6.25전쟁 70주년이다.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지만, 6.25전쟁으로 한국군 14만 명, 유엔군 16만 명, 북한군 93만 명, 중국군 100만 명, 민간인 2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전쟁고아 10만 명, 이산가족 1,000만 명을 낳았으며, 공장과 산업 시설, 학교, 주택, 도로, 교량 등이 파괴되어, 유래를 찾기 어려운 피해를 가져왔다.

나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덕산초등학교와 진해중·고등학교,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해군군의학교 군의후보생 19기로 입대해 1966년, 해군 의무관 대위로 임관, 주월 백구부대에서 종군하고, 1969년, 해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6.25전쟁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 미국 작가 바브 드러리와 톰 클라빈이 저술한 『The Last Stand of Fox Company』를 2년에 걸쳐 번역했다. 처음에는 원제대로 『폭스 중대 최후의 결전』으로 출판했으나, 『장진호전투』로 개제하여 재판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참 많이 울었다. 사랑과 평화가 무엇이길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름도 없는, 아는 사람도 없는 이국만리 한국에 와서 생명을 걸고 싸웠는지, 전우애가 무엇인지 뼈에 사무쳤다.

나는 한국어판 『마산방어전투』를 펴내고 싶었다. 마산방어전투는 가장 길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처절한 전투였다. 60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싸운 전투에서 아군은 1천여명이 전사하고, 5천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적군은 4천여명이 죽고, 3천여명이 포로가 되는 대혈전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전투가 6.25전쟁사에 누락되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실종 군인들의 인식표를 찾기 위하여 서북산과 여항산을 답사했

고, 그 곳들에서 채록한 사료를 근거로 『마산방어전 루트를 찾아서』를 엮었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자료를 수합하고, 집필하는 과정에서 부족함을 느껴 다시 보충하고 싶었다. 마침 6.25전쟁 때 마산을 방어하고, 사수한 미25 보병사단의 방어전투기가 미연방 정부 서류저장처National Archives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어렵게 자료를 확보했다. A4 500매가 넘는 그들의 기록은 대단했다. 다급한 전쟁 상황에서도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의 진중일지가 촘촘하고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버금갈 만큼 소중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않은 일이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번역작업을 시작했으며, 근 3년이 걸렸다. 이 번역서가 잊혀져가는 『마산 방어전투』를 소개하고, 6.25전사에 기록되어 역사 보존의 한 장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이 일을 하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마산방어전 루트를 찾아서』를 발간하고, 전투 흔적 발굴 현장을 취재하여 격려해준 무적해병신문 신동설 이사장님, 전투 번역 작업과 전투 현장 흔적 찾기를 현장 취재 보도하고, 영상 송출해주신 문화복지 신문사, 문화복지방송사 장종열 이사장님, 전투 유적 발굴팀의 일원으로 현장에서 같이 움직이며, 편집 얼개와 서문을 손질해주신 문인협회 김복근 박사님, 기록물을 전자 출력하고, 교정 정리해 준 이화영 사회복지사님, 전투 유적 발굴을 안내하고, 도와주신 현지 주민 손상록, 허룡시 선생님, 한글 교정을 해주신 국어교육가 최승호 선생님, 손영찬 변호사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창원시로부터 출판지원금을 수혜받도록 주선해주신 6.25전쟁 참전유공자회 진해지부장 손담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출판지원금을 지원해주신 창원시 관계자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전쟁에 관한 사실 중심의 딱딱한 번역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겠지만, 마산이 무너지면 부산이 함락되고, 나라가 전복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 대한 기록이기에 성의를 갖고 읽어, 당시 상황을 분명하게 회억回憶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년 5월

大湖 배대균

때는 1950년 7월 하순, 기온은 최고도에 오르고 햇빛은 대지를 메마르게 했다. 적들은 산 중의 산, 거칠고 가파르고 바위로 뒤덮인 정상에 자리잡고, 이런 것들이 아군에게 더 많은 사상자를 내게 했다.

1950년 7월 26일, 하동을 점령한 인민군 6사단은 함양과 산청을 점령한 인민군 4사단과 함께 7월 31일 진주를 점령했다.

진주의 인민군 6사단(사단장 방호산)은 8월 1일, 마산 접경에 이르고, 적군 4사단은 합천과 의령을 경유 낙동강 서쪽 강둑에 이르렀다.

8월 1일~2일 사이, 마산방어 병력은 진주에서 후퇴한 미25보병사단 27연대, 김성은 해병대대, 민육군대대, 약 1,000명의 전투경찰 병력이 모두였다.

대구 8군사령관 워커 장군은 마산방어의 심각성에 즈음하여 대구 북방

상주에 주둔 중인 미25보병사단을 8월 3일, 마산으로 급파했다. 이어 제5전투연대와 미제1해병여단을 추가로 배치했으며, 킨 특수임무대를 편성한 후 적군 6사단과 맞서게 했다.

때를 같이하여 경북 상주의 미25보병사단은 8월 3일, 마산으로 기적의

대이동을 완료하였으며, 바야흐로 ‘마산 방어전투’의 막이 올랐다.

 

  (진주시의 1950. 7. 28~7.31의 상황도)
7.31 UN군 완전철수

 

 

▣ 적군 방호산의 제6사단

북조선군 방호산 제6사단은 제1연대, 제13연대, 제15연대와 포병연대로

구성되며, 앞서 중국 공산군 제166사단이다. 1942년 만주의 관동군에서 탈주한 한국인들과 만주 조선족으로 편성되었으며, 중국 공산당 8로군 예하동북 의용군으로서 항일 투쟁 ‘홍군’의 후예이며, 장개석 군대와의 ‘국공내전’을 치르면서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단이다.

 

  ▶적군 6사단 남침루트

서울 점령 6. 29.➝목포 점령 7. 24.
목포➝진주 점령 7. 31.
진주➝마산 접경 지역 8. 1.

  이들 166사단은 국공내전이 마무리된 1949년 7월에 북조선군으로 전환

하고 제6사단으로 명명되었다. 그들은 최초 개성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김포반도-영등포를 거쳐 서울 후방을 차단했으며, 이후 한강을 도하한 후 국군과 UN군이 거의 배치되지 않은 서해안을 따라 줄곧 남하를 계속했다.

6사단은 별다른 피해 없이 전투력을 온전하게 보존한 채 금강을 도하한후 계속 남하하여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장악하고 7월 24일, 목포를 점령했다. 이들은 한강 도하 후 통상적인 부대 이동이 아닌 주간은 산길을 행군하고 야간은 불을 끄고 차량 등을 이용하는 ‘왕복 수송-피스톤 수송’ 등의 방법으로 미군의 정찰 감시망을 피해 목포까지 도달했다. 다음날은 이어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하동 전투를 치른 27일, 동진을 계속하여 7월 31일 마산행 도로를 차단하고 진주를 점령했다.

적군 6사단은 1개 모터사이클연대, 제105기갑사단, 제83기계화연대, 전

차 T-34 25대와 남한 지역에서 강제 동원한 농부와 청년 2,500여명을 충원하여 7,500여명의 병력이었다. 그들은 대구를 향하여 달리던 북한군 제1, 3, 15사단과 포항의 12, 15사단들이 전선에 이르기 근 10일 전에 이미 마산 접경에 이르렀다. 방호산 6사단장은 “마산을 점령하면 적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표인 부산 점령은 시간문제이다”라면서 장담했다.

 

  적군 제6사단장 방호산(전 중국 공산군 8로군 166사단장)

미8군 정보부는 서울을 점령한 이후 북한군 6사단의 행방을 놓친 상태였다. 7월 20일, 8군 정찰기는 군산 부근에서 남하 중인 대규모 부대를 발견하였지만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로 오판했으며 이후 비가 계속 내려 정찰할 수 없었다. 국군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는 포로를 통해 적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육군 본부에 보고하고 육군 본부는 미군에 통보했다. 그러나 미군은 ‘국군 정보는 과장이나 허위가 많다’면서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찰기 정보에 의존했으며 그것이 과오였다. 6사단이 진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존재가 노출되었다.

적군 6사단은 서울이 함락된 지 26일 만에 목포를 점령하고, 그 후 7일 만인 7월 31일, 진주를 점령했으며, 또다시 하루만에 마산시 접경에 이르렀다. <다음호에 계속>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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