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43. 죄인을 찾아주는 내금강 호수 언덕의 명경대

시골 선비가 금강산 구경을 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어요. 벌써 며칠 동안 혼자 시골길을 걸어온 선비는 심심해서 누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했어요.

선비는 길을 걸으면서 너무 심심해서 자기가 평소에 그리던 아름다운 금강산을 중얼거렸어요.

“봄의 금강산, 여름의 봉래산, 가을의 풍악산, 겨울의 개골산이라지만, 역시 봄의 금강산이 최고다.”

해가 비로봉에 웅크리고 앉아 마지막 햇살 한 줌을 선비 얼굴이 비추자, 선비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 빛을 띠웠어요.

선비가 묵묵히 노을이 잠잠히 물들어가는 강가 언덕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마침 강가 길이 끝나고, 산모롱이를 도는 데 선비의 앞쪽에서 스님이 혼자서 등에 봇짐을 지고 걷고 있었어요. 스님의 차림으로 보아 금강산 구경을 가고 있는 게 분명했어요.

선비는 빠른 걸음으로 스님의 뒤를 따라 붙었어요.

“스님, 초면입니다. 혹시 금강산 유람을 가시는지요?”

스님은 먼 길에 지친 듯, 선비를 향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힘없이 대답했어요.

“그렇소.”

선비는 용기를 내어 더 빠른 걸음으로 선비 뒤에 바짝 따라 붙어서 말을 걸었어요.

“스님은 웬일로 혼자서 이렇게 먼 길을 나오셨습니까?”

스님은 퉁명스럽게 선비의 말을 되받았어요.

“그러는 댁은 왜 혼자요?”

“그렇네요.”

선비는 더 말을 걸지 않고 둘이서 한 참을 걸었어요.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걸어가자, 그들의 앞 쪽 좀 먼 곳에 귀티가 나 보이는 양반 한 사람이 점잖게 걷고 있었어요.

그때 침묵으로만 걷고 있던 스님이 그 앞쪽의 귀티가 나 보이는 양반을 향해 큰소리로 불렀어요.

“여보시오. 양반, 우리 함께 갑시다. 금강산 유람이지요.” 스님이 크게 부르는 소리에 양반은 쉽게 뒤를 돌아보며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빨리 오시오. 해가 기우는 데, 어디 주막에 들어가서 쉴 곳을 찾읍시다.”

선비는 스님에게 약간의 의심쩍은 감정이 갔지만 꾹 눌러 참고, 빠른 걸음으로 함께 걸어 양반 가까이로 갔어요.

양반, 스님 그리고 선비는 서로 손을 잡고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어요.

밤이 늦어 세 사람이 주막을 찾으니 마침, 봄철을 맞아 금강산 유람을 온 사람들로 붐벼 주막에 방이 없었어요.

이때, 스님이 나서서 주막의 여주인과 한 동안 말을 주고받더니, 겨우 방 한 칸을 얻어 스님, 양반 그리고 선비가 한방에서 자기로 했어요.

세 사람은 간단하게 저녁밥을 때우고 곤하게 잠이 들어버렸어요. 그들은 짐과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코를 골며 아주 깊은 잠 속에 빠져 세상모르고 잤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난 양반이 자기의 짐을 챙기다가 두 사람을 향해 불평을 털어놓았어요.

“허 그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스님이 눈을 부스스 비비고 일어나 양반의 얼굴과 선비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양반, 웬일이오. 잠도 못 자게요.”

“스님도 참, 그만큼 잤으면 되었지요. 그런데 내 봇짐에 넣어둔 돈 뭉치가 없어졌어요.”

“예!”

“예?”

스님과 선비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동시에 눈을 크게 뜨고 서로 마주 앉았어요.

양반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두 사람을 보고 말했어요.

“스님과 선비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이 일을 주막 주인에게 의논해야겠소. 혹시라도 모르니!”

“그러시구려.”

선비와 스님은 응겹 결에 별 생각 없이 대답을 했어요.

양반은 조용한 방에서 주막집 여 주인과 마주 앉았어요.

“주모, 나를 도와주시오. 내가 지난밤에 봇짐 속에 넣어둔 돈 뭉치를 도둑맞았어요. 당신 주막에서 자고 일어난 일이니 당신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요.”

양반의 이 말에 여 주인은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어요.

“양반 어른, 우리가 주막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일을 종종 당합니다.”

“그래요? 이럴 때 어떻게 처리하나요?”

주막 여주인은 양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어요.

“범인은 스님과 선비 두 사람 중에 있어요. 우리 주막에서는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이 없어요. 제가 밤새 주막안의 모든 방을 지키다시피 했어요.”

양반의 눈빛이 밝아지며 돈뭉치를 찾은 것처럼 얼굴에 자신감이 돌았어요.

“주모,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요?”

이 말을 듣고 여 주인이 망설이다가 양반을 향해 무겁게 한 마디 했어요.

“양반 어른이 생각하기에 누구를 범인으로 봅니까?”

그 말을 듣고 양반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더니, 어렵게 한 마디 했어요.

“글쎄요. 스님은 돈과 거리가 먼 사람이고, 그 선비를 의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차림도 허술하고 돈을 탐낼 것 같아요.”

“양반 어른,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지요. 저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양반 어른의 그 말대로라면 돈을 찾기 위해 관청에 상소를 올리시오.”

“고을 원에게 상소를 올리라고요? 그 방법 밖에 없겠군.”

잠시 후, 양반은 방으로 돌아와 스님과 선비에게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어요.

“이 방에 잠을 잔 사람은 나, 스님 그리고 선비 세 사람이오. 스님은 재물과 거리가 먼 분이시고, 그렇다고 선비를 의심할 수는 없지만.... . 나는 이것을 관청의 고을 원에게 상소를 올리겠소.”

그 이야기를 듣고 선비와 스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선비는 양반의 말을 듣고 마음이 상했어요. 허름한 행색을 한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가는 양반이 무척 못마땅했어요.

양반은 돈뭉치를 찾기 위해 상소장을 들고 금강산 골짜기에 있는 관청으로 갔어요.

양반은 고을 원에게 상소장을 올리면서 이렇게 썼어요.

“어제 주막에서 한 방에 세 사람이 잤는데, 자는 동안 돈뭉치를 잃어버렸어요. 승려란 재물을 탐내지 않고 도를 닦는 사람이니, 그렇게 돈 뭉치를 훔칠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면 가난한 선비가 의심이 되니 이를 밝혀 주십시오..”

원님은 상소장을 몇 번이고 읽은 후에 즉시 스님과 선비를 관청으로 불렀어요.

원님은 세 사람을 방에 앉게 하고 찬찬이 말을 걸었어요.

“양반, 스님, 선비가 한 방에서 잠을 잔 것이 맞은 가요?”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함께 대답을 했어요.

“예!”

원님은 이런 일을 여러 번 해결한 경험이 있어서 여유 있게 웃으면서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어요. 원님은 사람의 눈빛만 보아도 사람의 마음속을 헤아릴 줄 아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원님은 두 사람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심문을 계속했어요.

“스님, 어젯밤에 주무시다가 일어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피곤해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주무실 때, 양반의 바랑이 어디에 있던가요? 무슨 색이던가요?”

“창가에 반듯이 세워져 있고, 회색이었어요.”

스님은 그 일을 너무도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고을 원님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얼굴에 아지 못한 웃음을 머금었어요.

“선비께서는 어느 쪽에 주무셨어요.”

“예, 그 바랑 바로 옆에서 잤지요.”

“그 가방 옆에 주무셨으면 가방이 열려 있던가요? 잠겨 있던가요?”

“글쎄요, 그것을 볼 겨를이 없었어요. ”

“말이 안 되지요. 바로 옆에 두고 잠을 잤는데요?”

고을 원은 이런 저런 질문을 계속해 대며 두 사람의 마음을 깊이 꿰뚫어 보았어요.

“좋습니다. 이미 범인은 찾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원님의 그 말을 듣고 양반은 돈뭉치를 찾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 얼굴이 화안이 밝아졌어요. 그러면서 양반의 눈길이 선비에게로 가며 이상한 웃음을 얼굴에 띠고 선비를 멸시하듯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원님 잎에서 ‘범인을 찾았다’는 말을 하자, 스님의 얼굴이 대번에 새파랗게 질렸어요. 고을 원님은 그런 스님의 얼굴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보고 묘한 웃음을 지었어요.

고을의 원님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우고 세 사람을 데리고 내금강의 명경대로 갔어요.

고을 원님, 양반, 선비 그리고 스님이 내금강의 명경대 바위가 있는 언덕에 섰어요.

명경대 앞의 호수가 거울처럼 맑아 호수의 물빛이 하늘 구석구석까지 비추는 것 같았어요. 하얀 양떼구름이 파란 호수에 둥실 둥실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네 사람은 그 맑은 그림 앞에 감동을 했어요.

그림같이 맑고 고운 호수 그 위에 있는 명경대 언덕에 네 사람이 그림처럼 섰어요.

고을 원은 선비, 스님에게 정중하게 말했어요.

“스님, 선비께서는 명경대 앞에 서십시오. 저 맑은 호수는 너무 맑아서 하늘의 구석구석까지 비춘다고 해요. 그러므로 호수에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죄까지도 비추게 됩니다.”

고을 원님이 정중하게 말하자, 모두들의 마음이 호수처럼 맑아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스님의 얼굴이 새파래지며 호수에 비칠 자신의 얼굴을 피하는 것 같았어요. 스님은 무엇에 쫒기는 초조한 기분으로 금세라도 누가 고함을 지르면 울먹일 것 같은 그런 표정이 되었어요.

고을 원님은 선비, 스님 두 사람의 눈을 감게 한 후, 스님은 명경대 바위 오른쪽 햇살이 잘 비치는 곳에 세우고 선비는 명경대 바로 앞 햇살이 비추지 않는 곳에 세웠어요.

“자! 이제 하나, 둘, 셋 하면 두 분이 눈을 뜨십시오. 죄가 있는 사람은 호수에 얼굴이 비치고 죄가 없는 사람은 얼굴이 호수에 비치지 않습니다.”

선비와 스님은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특히 스님은 안절부절 못했어요. 스님의 두 손이 바르르 떨리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았어요.

“자, 하나, 둘, 셋.”

고을 원, 양반, 선비 그리고 스님의 눈이 동시에 호수로 화살처럼 날아갔어요. 그들의 시선이 호수에 꽂히는 순간, 놀라서 모두가 고함을 질렀어요.

“스님의 얼굴만 호수에 나타났다.”

스님은 거울같이 맑은 호수에 자기의 얼굴만 나타나자, 얼굴이 새파랗게 긴장되어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기의 봇짐을 양반에게 힘없이 던졌어요.

양반은 그런 스님의 행동을 보고 놀랐어요. 여태까지 선비를 범인으로 오해한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양반은 자기 옆에서 환히 웃고 있는 선비의 손을 뜨겁게 잡았어요.

양반은 선비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선비의 두 손을 꼭 잡고 눈시울을 붉혔어요. 도둑의 누명을 쓰고도 한 마디 변명 없이 묵묵하게, 침착하게 선비의 도를 지키는 선비를 바로 볼 수가 없었어요.

고을 원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스님 가까이 가서 스님의 등을 다독이고 있었어요. 그런 그들의 모습이 호수에 그림처럼 일렁이며 맑게 비추어졌어요.

그 후부터 명경대에 서면 죄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고, 죄가 있는 사람은 명경대 앞에 서기를 꺼려했어요. 명경대 앞 호수는 사람의 얼굴뿐만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비춘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어요.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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