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41. 금강산 유점사 호랑이를 탄 소년

조현술 논설위원


금강산 유점사에 초겨울이 찾아왔어요.

유점사를 안을 듯이 포옥 감싸고 있는 금강산 계곡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겨울 꿈을 꾸고, 산짐승들도 겨울 채비에 바빴어요.

비로봉에 저녁놀이 물들어가자, 유점사 넓은 법당에 하루를 닫는 종소리가 뗑, 땡, 땡 울렸어요. 그 종소리에 따라 유점사 안에 있는 스님들의 긴장된 발걸음이 바쁘게 법당으로 향했어요.

넓은 법당에는 큰스님이 부처님 아래에 서서 위엄을 갖추고 법당 바닥에 꿇어 앉아 있는 모든 스님들을 호령하듯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법당에는 스님들의 숨소리만 들렸어요. 드디어 주지, 큰스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법당 안을 울렸어요.

“오늘 유점사 아래에 있는 말사들의 보고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때, 아주 해맑은 얼굴의 소년 스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며 유점 아래 있는 모든 절들의 상황을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하기 시작했어요.

“ 장안사, 신계사, 표훈사는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 보고가 있자, 큰스님이 소년 스님을 내려다보고 벌컥 화를 내었어요.

“금강산 4대 사찰은 빼고 말사들 중심으로 보고하라.”

“옛. 정양사, 영주암, 건봉사, 보덕암, 영통사 모두가

부처님 모시기에 성실하였습니다.“

“ 닥쳐 ”

그러자, 큰스님의 고함소리가 법당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소년 스님을 위협하듯 했어요.

“지금, 장안사에는 절름발이, 귀머거리, 장님, 불구자, 고아, 등 괴로운 마음을 안고 부처님 품에서 울고불고 야단인데 그 말을 한 마디도 없느냐? 우리 유점사가 본사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단 말이냐?”

소년 스님은 큰스님에게 변명할 기회도 없었어요. 큰스님이 걱정하는 것은 미리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소년 스님은 입술 꼭 깨물고 참았어요.

소년 스님은 큰스님의 우격다짐의 성격을 아는지라 숨도 크게 쉬지 못했어요. 어쩌다 변명을 하다간 소년 스님을 향하여 죽비든지, 그 무엇이 날아들지 모르거든요. 법당에 모여 있는 스님들도 큰스님의 말이 당연한 것처럼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어요.

다음날 아침이어요.

소년 스님은 오늘도 유점사 본사 아래에 있는 말사에까지 돌아보고 큰 스님에게 보고를 해야 했어요. 어제의 일이 악몽처럼 떠올라 소년 스님은 괴로워서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나이 많은 스님에게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유점사 아래에 있는 말사까지 다 돌아다니려면 그 길이 무려 200리나 되는데, 그 길을 하루에 다녀오면 왕복 400리가 됩니다. 어떻게 그 먼 길을 걸어 암자마다의 일을 소상하게 다 보고를 받아 옵니까? “

“그렇지만 참아라.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유점사 아래 말사들이 무려 20암자에 100명에 가까운 스님, 불자들이 있는데 큰스님이 저렇게 무섭게 하지 않으면 사찰의 질서가 서지 않게 된단다.”

“저는 큰스님이 부처님보다 더 무서워요.”

“그래도 참아라.”

소년은 아침 공양을 하는 둥 마는 둥 때우고, 신 끈을 바싹 동여매고 유점사를 나섰어요.

소년이 하늘을 보니 나직이 내려앉은 잿빛 하늘이 꼭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였어요.

“하아! 이런 날은 빨리 다녀와야 하는데 왕복 400리 이면 산길을 뛰어야 할 정도로 빨리 걸어야 하는데.”

소년이 숨을 헉헉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다,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앞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소년이 매일 이 마을 앞을 지나가게 되어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말도 주고받았어요.

“아저씨, 지금 무엇을 하시는 건가요?”

“어? 스님이군요. 이웃집 대문이 있는 곳까지 서로 굵은 새끼줄을 깔고 있어요.”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굵은 새끼줄을 이웃집 대문과 서로 연결하듯 깔고 있어요?”

소년은 그 아저씨로부터 굵은 새끼줄을 깔고 있는 이유를 들었어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내린 눈의 높이가 어른 남자의 키보다 더 높게 쌓이게 되므로 길, 마을의 집들이 눈 속에 묻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뒷집 사람들이 굵은 새끼줄을 서로가 잡아 흔들고 돌리면 눈 속에 작은 굴이 생기고, 그 굴로 통하여 양식, 위급한 약 등을 서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다.

소년은 그 산마을 길을 내려오면서 생각했어요. 자신은 눈이 적게 오는 남쪽에서 자라 그 아저씨의 말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놀이처럼 생각되었어요. 그 산골 마을 아이들이 눈 속의 왕자처럼 좋았어요.

소년은 숨을 헐떡거리며 유점사 말사들을 찾아다녔어요.

“오늘은 법기봉에 자리 잡은 보덕암, 백운대의 불지암부터 먼저 가야지. 한 곳이라도 빠지면 큰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소년은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서 달리는 속도가 웬만한 들짐승보다 더 빨랐어요. 소년은 말사들을 일일이 돌아보고 그 말사의 주지스님으로부터 암자의 상황 보고를 받았어요. 암자 스님들의 상태, 불공하는 동태, 시주하는 불자들의 태도 그리고 본사인 유점사에서 도와주어야 할 일 등을 일일이 보고받아야 했어요.

소년은 숨을 거칠게 쉬며 뛰어가는 걸음걸이로 빨리 걸어 유점사로 들어가는 산 계곡에까지 접어 들었어요. 유점사 계곡에 접어 들자, 날씨가 심상치 않았어요.

“아, 큰일났구나. 눈발이 날리는 것이 심상치 않구나.”

소년이 유점사로 들어가는 산길로 접어들자, 눈발이 솜뭉치처럼 펑펑 쏟아졌어요. 소나무에 눈송이 꽃이 피기 시작하자, 소나무 가지가 무게 눌려 아래로 처지고, 앞산 뒷산이 눈 속에 그림처럼 아슴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소년은 가슴이 쿵덕거렸어요.

“아, 어쩌나? 함박눈 때문에 산길이 눈에 묻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언덕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구나.”

소년은 눈 속에 묻힌 산길을 한 발씩 겨우겨우 찾아 올라가지만 점점 눈이 많이 내렸어요. 눈이 소년의 무릎까지 내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소년은 이마에 땀을 흘리고 숨을 씩씩거리며 산길을 한 발, 두 발 올라갔어요. 길인 줄 알고 밟았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치기도 했어요. 저 멀리 산 중턱에 유점사가 눈 속에서 그림처럼 아슴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소년의 가슴이 콩닥이기 시작했어요. 절간의 하루를 반성하는 절간 승려들의 법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소년은 법회시간까지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면 큰스님에게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손발이 바르르 떨리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았어요.

소년은 무릎 위에까지 내린 눈 속을 헤쳐가면서 입술을 깨물었어요. 어떻게 하든지 종소리가 나기 전에 법당에 닿아야만 큰스님의 그 끔직한 질책을 받지 않을 것이니까요.

소년은 숨을 씩씩거리며 무릎 위에까지 쌓이는 눈 속을

헤치고 한 발씩 옮겼어요. 함박눈이 내리는 산 속이지만 유점사 절이 멀리서 제법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어요.

소년은 발에 힘을 주어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가려고 모진 추위 속에서도 이마에 땀을 흘리며 발걸음 빨리 옮겼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뗑- 떼에엥-”

“아하! 드디어 종이 울려버렸구나.”

소년은 그 종소리를 듣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 위에 벌렁 드러누웠어요. 하늘을 보고 드러누운 소년은 눈이 자기 얼굴에 펑펑 쏟아져도 눈을 뜬 채, 그대로 눈 속에 푸-욱 묻히고 싶어,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요.

소년의 눈에는 그 무시시한 큰스님 얼굴이 커다란 마귀처럼 어른거렸어요.

“아!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지금 쯤 나 때문에 큰스님이 법당에 모인 스님들 앞에서 어떤 무서운 행동을 하실까!”

소년은 큰스님의 무서운 고함소리와 앞뒤 없는 괴팍스런 행동을 생각하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어요.

“아! 이제 나는 유점사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소년은 눈 위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뒹굴었어요.

“그냥 모든 것을 무릅쓰고 유점사로 들어갈까?”

“아니야, 그 무서운 큰스님에게 벼락같은 벌을 받고 절간의 모든 스님들이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어.”

소년은 눈 속에 뒹굴며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아! 어머니, 어머니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승려가 되었건만...”

소년은 눈 속에 엎드려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요. 그러다소년은 입술을 깨물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눈 속에 벌떡 일어났어요. 여태까지 눈 위에서 뒹굴던 그런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어요. 그의 몸과 행동이 너무도 단호했어요.

소년은 눈 속에서도 익숙한 길을 찾아 내려갔어요. 그곳은 맑은 물이 고이는 작은 연못이었어요. 고향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간혹 찾는 작은 연못이지요.

소년은 그 연못가 언덕에 섰어요. 먼 고향 하늘을 향하여 서 있던 소년은 고향 쪽으로 크게 절을 두 번 했어요.

“어머니! 저는 아름다운 눈 속에서 어머니 찾아갑니다.”

소년은 목이 메여 흐느끼며 어머니를 부르다가 살얼음이 언 연못 속으로 몸을 ‘풍덩’던져버렸어요. 살얼음이 언 연못은 꼬르륵 거품을 남기고 소년을 굴컥 삼켜버렸어요.

하늘의 눈송이가 어머니 울음처럼 그 위에 함박눈이 되어 펑펑 한없이 내렸어요.

한편, 유점사 법당에서는 소년 스님을 찾는 큰스님의 고함소리가 법당 안을 쩌렁쩌렁 울렸어요.

“종이 쳤는데 아직 말사의 일을 보고할 자가 없는가?”

“예, 눈이 저렇게 펑펑 쏟아지니 오지 못하고 말사에 자고 내일 올 것 같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는가? 그 아이가 얼마나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아이인데, 지금 즉시 눈이 내리는 산길을 찾아 내려가거라.”

큰스님의 추상같은 명령에 젊은 스님 십 여 명이 아이들의 키 높이까지 내린 눈을 밞고 소년을 찾으려 내려갔어요. 젊은 스님들도 소년이 걱정되어 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갔어요.

얼마 후, 젊은 스님들이 훌쩍이며 법당 큰스님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모여 들었어요. 누군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큰스님에게 말했어요.

“눈길에 나 있는 발자국을 따라 갔더니, 소년이 연못 속 으로......”

“뭐? 소년이 연못 속으로?”

그 스님은 어렵게 말을 끝내고 큰스님 앞에 꿇어 앉아 흐느껴 울었어요.

큰스님의 손끝이 가볍게 떨리며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부처님 앞으로 출가한 사람이 죽음 앞에 함부로 눈물을 보이면 중생을 이끌지 못하니라.”

그렇게 말하는 큰스님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벽화를 그리는 화공을 불러라.”

잠시 후, 법당에 벽화를 그리는 화공이 종이와 붓을 준비해서 왔어요. 큰스님은 눈가에 마알간 이슬을 달고 화공에게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지시했어요. 화공도 스님의 말에 감동이 되어 잠을 자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다음날 아침나절, 큰스님은 유점사의 모든 스님들을 법당에 불러 모았어요.

“여러분, 저기 벽에 여태 보지 못하던 벽화가 있지요. 한 ‘소년이 호랑이’를 타고 있지요.”

법당에 모인 스님들은 호랑이를 타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았어요. 연못에 빠져 죽은 그 소년의 얼굴이었어요.

스님들은 중얼거렸어요.

“살아 이 유점산 산길을 숨 가쁘게 달리더니 이제 죽어서 호랑이 등을 타고 다니겠네.”

큰스님은 부처님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참선을 하면서 중얼거렸어요.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소년을 유점사의 후계자로 키우고 싶었는데...”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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