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33. 세존봉의 토끼 바위와 자라 바위

금강산 세존봉 중턱 동굴 속이어요.

그 동굴에는 사연이 깊은 부부가 숨어 살았어요. 항상 그 부부의 얼굴에는 구름 낀 하늘처럼 수심이 가득했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무슨 말 못할 사연을 지녔는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살았어요.

그런 어느 날, 그날은 세존봉 하늘이 노을로 바알갛게 물이든 저녁나절이었어요. 아내가 세존봉 언덕에 앉아 남편에게 자기의 비밀을 털어 놓으려고 중대한 결심을 했어요. 더 이상 남편을 속이는 것은 부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울먹이면서 자기의 숨은 얘기를 털어 놓았어요.

“자기야, 나는 솔직하게 말해 이 세상 여자가 아니어요. 나는 동해바다 용궁에서 살던 용녀로 용왕님을 모시는 궁녀였어요. 용왕의 사랑을 받아 용왕 곁에서 용왕의 시중을 들었지요.”

아내가 여기까지 말을 털어 놓자, 신랑은 아내 가까이 다가가 아내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어요.

“궁녀로 일하는 10년째가 되는 날에 내가 큰 실수를 했어요. 글쎄, 용궁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정대접을 깨뜨렸어요. 나는 그 일로 용왕의 벌을 받아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온 몸이 되었지요.“

아내는 그 말을 하고 아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남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펑펑 울었어요. 남편은 그런 어려운 얘기를 듣고 아내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며 위로의 말을 했어요.

“당신의 표정이 항상 수심에 찬 이유를 알겠군요. 우리가 이 깊은 금강산 세존봉 중턱 동굴에서 첫 대면을 하는 날부터 우리는 운명적으로 만난 것 같구려. 나도 당신과 같은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이오.”

남편은 동굴의 속의 차가운 공기 속에 길게 한숨을 내 뱉으며 쑥스러운 듯이 말을 했어요.

“나도 당신과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있구려. 나는 본래 달나라 옥토끼로 살다가 옥황상제의 귀여움을 받아 하늘나라 정원에 살게 되었지. 그러다가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하늘나라 약초원에 기어들어가서 한 포기 밖에 없는 불사초를 뜯어 먹게 되었어. 그 벌을 받아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이렇게 금강산 동굴에서 사람으로 살게 되었어.”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털어 놓고 나니 가슴이 후련 해졌어요. 남편과 아내는 서로 손을 따뜻이 잡고 말했어요.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맺어준 인연이오. 지난날이야 아무려면 어떻소. 우리 여기 인간 세상에서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재미나게 살아봅시다.”

다음날부터 아내와 남편은 겨울에 먹을 양식 준비를 하기 위해 세존봉 골짜기의 나무 열매, 약초뿌리를 캐러 다녔어요.

두 사람은 아름다운 금강산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니며 겨울 양식 준비에 바빴어요. 그러다 두 사람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만 보이는 세존봉 골짜기 넓은 바위 위에서 다리를 펴고 잠시 쉬게 되었어요.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리다 한 마디 했어요.

“어제 당신의 비밀을 말하고도 오늘 종일토록 말이 없고 수심에 차 있는데 무슨 다른 걱정이 있어요?”

남편의 그 말에 아내는 자기의 마음을 들킨 것처럼 얼굴을 붉히며 무언가 숨기는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어요.

“실은 어제 당신에게 나의 용궁 이야기를 털어 놓고 편안하게 잠이 들었는데 글쎄, 꿈속에서......”

“그래? 꿈속에서 어쨌단 말이오?”

“말하기가 참 어렵네요.”

“여보, 우리는 부부야. 숨길 것이 무엇이 있소. 말해요.”

“어젯밤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났어요. 용왕님은 용궁에서 보던 그대로 진주로 만든 면류관을 쓰고 임금왕자(王)가 새겨진 푸른색의 비단도포를 입고 나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용왕이 당신 더러 어떻게 하라고 하든가요?”

“용왕님께서는 나 더러 고생이 많다고 하더군요. 나무와 물, 산밖에 없는 골짜기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더군요. 용궁을 떠난 지 10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원죄에 대한 시효가 지났으므로 용궁으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용궁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아내는 남편이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푸른 하늘에 둥실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어요. 아내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구름에게 솔직히 털어놓았어요. 이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부름을 받았다면 행복하게 살던 그리운 용궁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을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아름다운 금강산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어요. 더구나 남편과 정이 금실은실처럼 엮어져 있어서 용궁으로 갈래야 갈 수 없었어요.

남편은 푸른 하늘의 구름만 멍하게 바라다보고 있는 아내의 등을 손으로 가볍게 쓸며 물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용궁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아내는 남편이 다그치는 바람에 언 듯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솔직한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았어요. 아내는 꿈속에서 용왕님에게 목청껏 외쳤다고 했어요.

“용왕님, 이 금강산 생활이 고생스러워도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요.”

그러나 아내가 꿈속에 그렇게 고함을 질렀지만 그 소리가 나지 않고 입속에서만 중얼거렸어요. 그렇게 꿈속을 헤메다 잠이 깨었다고 했어요. 남편 앞에서 고백을 하는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남편은 울먹이고 있는 아내의 손을 끌어다 자기 무릎 위에 놓고 다독이며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나도 당신과 꼭 같은 처지가 아니오. 어떤 일이 있어도 세존봉 중턱의 이 바위굴 보름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요.”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가볍게 고개를 꺼덕이며 긴 한숨을 내 뱉으며 말했어요.

“용왕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찾아내는 신비술을 가지고 있어요.”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로하듯이 아내의 두 손을 꼭 쥐고 두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말을 자신 있게 했어요.

“걱정 말아요. 이 동굴 속에만 숨어 있으면 아무도 몰라요. 저 높은 하늘나라의 옥황상제도 이 동굴 속의 나를 못찾는데 저 먼 동해바다 용왕이 어떻게 당신을 찾아내겠소?”

그래도 아내는 걱정이 되는지 남편의 손을 꼭 끌어당겼어요. 동해바다의 용왕은 신비술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곳에 숨어 있어도 자기를 꼭 찾아 올 것만 같았어요.

“옥황상제도 지금 쯤 나를 찾고 있었을 텐데, 못 찾은 것을 봐요. 우리가 이 동굴에만 있으면 어느 때까지라도 일 없을 거요.”

남편과 아내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동굴 속에서 긴 겨울을 넘겼어요. 달이 없는 밤에만 부엉이처럼 잠시 동굴 밖으로 나다닐 뿐 동굴 안에서만 생활을 했어요. 두 사람에게 동굴은 자신들을 숨기는 중요한 곳이 되었어요.

이렇게 동굴 속에서 생활이 계속 되어 달이 바뀌고 해가 바꾸어졌어요. 그들 부부의 생활은 꿈속처럼 흘러갔지만 그렇게 동굴 속의 생활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어요.

간혹 아내가 푸념처럼 말하는 것을 들을 적마다 남편의 마음이 흔들렸어요.

“어휴, 이렇게 동굴 속에 갇혀 사니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가 없구나. 저 아름다운 금강산 경치를 보지 못하고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두 사람의 몸도 시들하게 약해져 갔어요. 입맛도 없고 몸도 약해져 병을 앓는 것처럼 약해져 갔어요.

남편은 그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마음이 흔들렸어요. 아내에게 저 아름다운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어요.

“여보 우리 이렇게 동굴 속에 갇혀 있지만 말고 금강산 구경을 나갑시다.”

“예? 그게 정말이오?”

“당신 말대로 우리가 이 아름다운 금강산 경치를 보지 못하고 동굴 속에만 갇혀 사는 것이 사람인가요?”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서로 손을 잡고 환히 웃었어요. 아내와 함께 동굴을 나온 남편은 발이 퐁퐁 뛰는 것 같이 가벼웠어요.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구룡연 계곡으로 내려갔어요. 그곳은 비단 폭 같은 폭포가 거울 속처럼 맑고 아름답지요. 더구나 그 구룡연계곡 양지녘 언덕에 피는 가지가지 산꽃은 꿈속을 걷는 것처럼 포근하고 아름답지요.

두 사람은 그 구룡연 계곡을 구경하면서 금강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동굴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 후회스러웠어요. 아내는 이런 구경을 시켜주는 남편이 무척 믿음직스럽고 좋았어요.

그들 부부가 구룡연 계곡을 구경을 하고 산꽃 언덕을 넘어 세존봉 봉우리를 향해 걸어 올라갔어요. 세존봉 봉우리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려니 두 사람의 이마에 금세 땀이 송긍송글 맺혔어요.

세존봉 중턱을 걸어 오르자, 멀리로 차츰 세존봉의 높은 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아내가 이마에 땀을 흘리고 숨을 거칠게 쉬는 모습이 안스러워 손을 꼭 잡고 끌어주며 산을 올랐어요.

“조금만 참아요. 저기 우뚝 솟은 곳이 세존봉이오.”

그들은 이제 조금만 오르면 세존봉 봉우리에 올라 금강산 구석구석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저 세존봉에 오르면 금강산을 한눈에 보게 되지요?”

그때였어요.

무서운 기운이 세존봉 중턱을 흔들었어요. 세존봉 봉우리에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덮이고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시커먼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무섭게 울리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은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 순간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났어요.

해금강 쪽, 총석정 앞의 동해바다가 폭풍으로 거세게 휘몰아치고 요동을 치며, 그 무서운 기운이 세존봉을 향하여 아우성을 치며 벋어 올 것 같았어요.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피할 곳을 찾으려고 허둥대다가 하늘의 천둥소리 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요. 하늘의 먹구름 속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남편의 귀에 굵직하고 무서운 소리로 들렸어요.

“옥토끼야, 듣거라. 나는 옥황상제이다. 이제 하늘나라로 돌아 오거라.”

그와 동시에 아내도 총석정의 파도가 몸부림치듯 하며 외치는 소리가 귀가에 다가왔어요. 동해의 무시시한 폭풍 속에서 우렁우렁 울려오는 용왕의 소리를 들었어요.

“용녀야, 이제 용궁으로 돌아오너라.”

아내는 겁에 벌벌 떨며 남편의 손을 꼬옥 끌어당겼어요. 남편도 그런 아내의 손을 잡고 무서움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어요. 남편의 머릿속에 안전한 곳은 오직 세존봉 중턱의 동굴밖에 생각나지 않았어요.

“여보, 우리가 숨을 수 있는 곳은 동굴 밖에 없소. 그리로 달려갑시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숨을 헐떡이며 세존봉 중턱에 있는 동굴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세존봉 산신령이 두 사람의 사랑을 시샘이라도 하듯 세존봉 산등성이에 천지를 뒤 흔드는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리고 주변이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어둠에 묻혔어요. 천둥소리가 세존봉을 뒤흔들자, 주변의 바위들이 서로 부딪치고 흔들리며 묘한 신비의 조화를 부리는 것 같았어요.

두 사람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손을 잡고 주변의 무서운 소리를 들었어요. 까만 어둠 속에서 무서운 바위가 구르는 소리, 그 바위가 깨어지는 소리 그러다 바위 끼리 서로 쿵쿵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어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주변이 잠잠해 지기 시작했어요. 세존봉을 감싸고 있던 까만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짙은 안개도 가볍게 사라지며 차츰 눈부신 햇살이 주변을 환히 밝게 비추기 시작했어요.

아! 그곳, 세존봉 중턱에는 여태보지 못하던 두 마리의 동물바위가 동상처럼 늠름하게 세워져 있었어요. 남편이 서 있던 세존봉의 남쪽 자리에는 거대한 토끼 동상 바위가 턱 버티고 서 있고, 아내가 서 있던 북쪽 그 자리에는 커다란 자라 동상의 바위가 서 있었어요.

저녁 햇살이 두 동물바위를 사랑스러운 빛으로 어루만지자, 두 바위 동상이 붉게 물들어가며 살아 꿈틀거리듯 했어요. 그들의 눈길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세존봉 중턱에 있는 동굴 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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