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31.옥황상제의 대머리를 가리는 세존봉 안개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어전 회의를 열었어요. 대신들이 하나, 둘 참석하여 자리를 채우자, 옥황상제는 천천히 높은 어좌로 올라가서 아주 밝은 얼굴로 말을 했어요.

“들으시오. 짐이 하늘나라에 있지만 저 하늘 아래 세상을 아직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했소. 하늘 아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느 곳이오?”

대신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서로 눈치를 보며 옥황상제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의논했어요. 그들은 중국의 산, 일본의 산 그리고 여러 나라의 산을 들먹이며 토론 했어요.

잠시 후, 대신들 중에 앞줄에 서 있는 총리대신이 굵직한 목소리로 옥황상제에게 말했어요.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희들이 알기로는 조선 땅에 있는 천하제일의 금강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고맙소. 짐이 그곳을 구경하고 싶소. 오늘 당장 출발하고 싶구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저희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셔야 하옵니다.”

“아니네. 그럴 것 없네. 나 혼자 가겠네.”

“폐하, 그곳의 경치는 좋다고 하나 산이 험하고, 무서운 산짐승들도 있다고 하옵니다.”

“어허, 내가 누구인가? 옥황상제가 아닌가? 황금 띠를 두른 옷, 번쩍이는 왕관을 보면 누가 감이 나를 해하겠느냐?”

“하오나, 폐하 그곳은 하늘의 법도를 모르는 하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걱정이 되옵니다.”

“그만들 하시게 더 이상 왈가왈부하면 짐이 화를 낼지도 모르네. 어험!”

옥황상제가 대신들을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을 하자, 대신들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물러났어요.

“폐하, 조심해서 다녀오시고. 그곳으로 가시는 길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바로 금강산 비로봉으로 내려가는 무지개를 타시게 되고, 잠시면 비로봉에 도착하시게 됩니다. 저희들이 그곳까지는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나 없는 동안 하늘나라 일들은 세자와 의논하게나.”

“폐하, 금강산을 구경하시고 돌아오시는 날은 궁궐의 모든 궁녀들, 선녀들 그리고 대신들이 무지개다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뭐, 그럴 것까지야.”

옥황상제가 하늘나라 아래 세상에 있는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나려하자, 신하들, 궁녀들 그리고 선녀들이 무지개다리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어요.

“내가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하늘나라 무지개다리로 돌아오면 대신들, 신하들, 궁녀들 그리고 선녀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줄을 서서 환영을 하겠구나.”

옥황상제는 무지개다리에서 걱정스런 얼굴로 줄을 서 있는 대신들, 궁녀들, 선녀들을 향해 환히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그들 중 몇 몇 신하들이 혼자 떠나는 옥황상제가 걱정이 되는지 무지개다리 끝까지 따라와 금강산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폐하 저희 두 사람이 폐하를 수행하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옥황상제는 그들의 호의를 완강히 뿌리치고 혼자서 금강산 구경을 떠났어요.

옥황상제가 무지개를 타고 조선 땅의 금강산 비로봉에 내려와 보니, 하늘나라 경치와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하늘나라의 그림 같이 평온한 정원만 보다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금강산을 보자, 그 감동에 입이 벌어졌어요. 기기묘묘한 바위, 그 바위 사이로 아기 손바닥 같은 울긋불긋한 단풍들, 산 숲마다 지저귀는 산새소리, 온갖 짐승들 그리고 계곡마다 그 푸른 폭포 줄기와 맑은 물은 하늘나라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하던 것들이었어요. 여러 가지 산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등성이를 오를 적에는 입을 벌려 감탄을 했어요.

“이곳이 바로 하늘나라이구나. 세상에 이런 꽃들이 피어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옥황상제가 금강산에 내려온 시기가 삼복더위가 한 창인 때였어요. 숲이 워낙 우거져 있기 때문에 산이 시원해 보였지만 이 산 봉우리, 저 산봉우리로 돌아다니는 옥황상제는 무더운 삼복더위를 참기가 힘들었어요. 더구나 그 거추장스런 예복을 입고 왕관을 쓰고 삼복더위에 가파른 산을 오른다는 것은 참으로 큰 고통이었어요.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바위 언덕을 오를 적에는 숨이 목에까지 헉헉 차올랐어요.

“그 참, 날씨가 무척 덥구나. 신하 한 두 사람이라도 데리고 왔더라면..... .”

땀이 비 오듯 하여 옥황상제의 온몸을 축축이 적셨어요. 이제 옥황상제는 위엄이고 체면이고 그런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하늘나라에서 쓰던 왕관도 벗었어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옥황상제는 옷이며 왕관을 손에 쥐고 숨을 헉헉거리며 산을 올랐어요.

비로봉에 오른 옥황상제는 천하절경을 한눈에 담았어요.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등성이, 그 등성이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무언가 옥황상제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경치는 좋았지만 뜨거운 여름 햇살은 옥황상제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려 쏘듯 했어요.

“어휴, 그 흔한 파초선이라도 하나 가지고 왔으면 저 따가운 햇살을 가릴 수 있으련만.”

옥황상제는 땀으로 축축이 젖은 옷을 벗어서 오른손에 들고, 번쩍이는 왕관은 왼손에 들고 숨을 헉헉거리며 비로봉을 내려왔어요. 옥황상제는 몸도 피로하고 더위에 지쳐서 어디 쉴 곳을 찾다가 시원한 폭포가 있는 구룡연 계곡에 닿았어요.

“와! 이 맑은 공기, 저 시원한 물줄기가 비단 폭처럼 내려는 폭포, 아! 여기 잠시 쉬어가자.”

옥황상제는 주변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워낙 더워서 손에 들고 있던 옷이며 왕관을 바위 위에다 내 팽개치기가 바쁘게 시원한 담소에 몸을 담갔어요.

“어, 이 시원함을 어디다 비기랴.”

그 뜨거운 비로봉 햇살, 옷을 축축이 젖은 땀, 숨을 막을 것 같은 그 더위에 고생하다 구룡연 담소의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것이 옥황상제에게는 꿈만 같았어요.

“아, 온몸을 타고 내리던 땀, 뜨거운 햇살, 아, 여기는 낙원이다.”

옥황상제는 하늘나라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하던 편안함에 빠져 눈을 감고 두 손으로 물을 가볍게 찰방거리며 어린애처럼 즐겁게 놀았어요.

그때였어요.

뜻밖에도 그 시간에 금강산 산신령이 금강산 순시를 나왔어요. 깨끗한 금강산을 더럽히는 사람이나 짐승들이 있으면 그들을 벌주기 위해 산신령이 종종 금강산을 순시하곤 하지요.

오늘도 산신령이 구룡연 폭포 근처를 돌아보며 주변을 순시하다가 구룡연 담소에서 목욕하는 인기척을 들었어요.

“어엇? 저런? 구룡연 폭포의 담소는 우리 산신령, 신선들이 마시는 신령약수이다, 그렇게 신령스런 맑은 물인데, 그곳에서 감히 목욕을 하다니? 어느 놈일까? 혼쭐을 내야겠네.”

산신령은 부리나케 구룡연 폭포 담소로 달려갔어요. 구룡연 담소 가까이 와서 주변을 살펴보았어요. 구룡연 폭포 담소 옆 넓은 바위 위에 아주 귀한 황금 띠의 옷, 금빛이 나는 왕관이 산신령의 눈에 띄었어요.

“아니? 이 옷은 황제나 입는 귀한 옷이 아닌가? 또 이 금빛으로 번쩍이는 왕관은? 옥황상제가 아니면 입을 수 없는 옷과 왕관이구나. 그렇다면 지금 담소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산신령은 담소를 내려다보았어요. 대머리 옥황상제가 세상모른 채 눈을 감고 담소의 시원한 물에 취해 눈을 감고 있었어요.

“으응? 어쩔 수 없다. 옥황상제를 감히 나무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를 용서할 수도 없고 그 대신 저 옷과 왕관을 가지고 가 버려야지.”

산신령은 조심스럽게 걸어가 바위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옥황상제의 황금 띠, 옷, 왕관을 손에 들고 비로봉 쪽의 깊은 계곡으로 사라져버렸어요.

“아무리 옥황상제라도 용서할 수 없어. 이 아름다운 구룡연 담소의 약수에 목욕을 하여 더럽히다니.”

옥황상제는 그런 것도 모르고 시원한 담소 물에 몸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었어요. 그 시원함에 빠져 담소 밖으로 나가기 싫어 눈을 감고 옥황상제는 여태까지 보아온 금강산 경치를 생각했어요.

“금강산의 천하제일 강산이 맞다. 세상에 이런 산이 어디 있으랴.

이제 이곳에 자주 와야겠네. 우리 신하들을 데리고 와서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어야지.”

옥황상제가 그 시원한 구룡연의 담소에 몸을 담군지도 반나절이 지났어요. 몸이 차츰 으스스 추워지기 시작하자, 옥황상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물 밖으로 나왔어요. 담소 옆에 있는 바위로 가서 옥황상제가 벗어 놓은 옷과 왕관을 찾았으나 온데 간 데 없었어요.

“어 엇? 내 옷과 왕관이 없어졌군. 분명히 이곳에 놓아두었는데. 그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침착한 옥황상제도 당황하기 시작했어요. 홀랑 벗은 알몸으로 어디에 함부로 갈 수도 없고, 더구나 왕관이 없으니 누구를 만나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할 수가 없었어요.

“어허! 이를 어쩌나? 이를 어째?”

옥황상제가 주변을 살폈으나 누구 한 사람 물어볼 사람도 없었어요. 누가 주변에 있다고 해도 그 벌거벗은 몸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신하를 두어 사람 데리고 올 것을. 잘못했구나. 후회가 막심하구나.”

옥황상제는 담소 옆 바위 위를 서성이며 이리저리 궁리를 했어요.

“‘내 옷을 가지고 간 사람 나오시오.’ 고함을 지를까? 아니야. 그것은 어린애 같은 생각이야.”

“그렇다면 이 알몸으로 어디를 간단 말인가? 지체 높은 옥황상제가 하늘나라에 발가벗은 알몸으로 올라간다면 온 하늘나라에 소문이 나서 .... .”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옥황상제는 옷과 왕관을 찾으러 금강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그 방법 이외에는 어떤 다른 묘책이 없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금강산 높은 비로봉에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보아야겠구나.”

옥황상제는 일단 주변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비로봉으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비로봉 높은 산을 오른다는 것이 이렇게 고된 일인 것을 몰랐어요. 알몸의 허벅지에 넝쿨 가시가 핏자국을 남기고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했으며 숨이 헉헉거려 금세라도 앞으로 엎어질 것 같았어요. 옥황상제는 도저히 비로봉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아, 그냥 여기 세존봉에 주저앉아 금강산 구경이나 하고 싶구나. 여기에 앉아 금강산의 굽이굽이 벋어 내린 기기묘묘한 산줄기를 구경을 하자. 이 알몸으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넓은 금강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옷과 왕관을 찾는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렵구나.”

옥황상제는 세존봉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하늘나라를 생각했어요.

“지금쯤 하늘나라에서는 내가 돌아올 것을 환영하느라고 대신들, 선녀들 그리고 궁녀들이 무지개다리에 모여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어떻게 왕관도 쓰지 않은 알몸으로 갈 수 있느냐?”

옥황상제는 옷도 왕관도 없이 세존봉 높은 곳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머언 동쪽 하늘을 보고 부처처럼 앉았어요.

“왕관과 옷이 없으니 하늘나라에는 갈 수도 없고 이 자리에 앉아 금강산 구경이나 하자.”

옥황상제는 세존봉 중턱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부처처럼 앉아 동쪽 하늘만 바라보았어요.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눈이 와도 옥황상제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금강산의 경치만 내려다보았어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많이 흘러갔어요. 낙엽이지고 흰 눈이 내렸다가 다시 새잎이 돋아났어요. 옥황상제의 몸은 서서히 커다란 바위로 굳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가 옥황상제라는 생각만은 여전히 그의 눈빛 속에 빛나고 있었어요.

“아, 부끄럽다. 안개와 구름으로 나를 가려다오.”

비와 안개, 구름이 뭉실뭉실 몰려와 옷도 왕관도 없는 옥황상제의 몸을 숨겨 주었어요.

그러다 날이 맑아 햇살이 밝게 비추는 날이면 옥황상제 바위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듯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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