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심정필정(心正筆正)

황진원(논설위원)

군북출신/전 장유초 교장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참 신기하다. 누구나 눈, 코, 입, 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생김새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뿐이 아니다. 미모, 성별, 성격, 나이, 건강, 기분 등이 얼굴에서 다 나타난다. 목소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목소리만 들어도 말하는 사람이 구분된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도 있고 성별도 구별되는 등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하나 더 고른다면 글씨(필체)를 말하고 싶다. 필체가 같은 사람은 없다. 그 속에서 예쁜 글씨가 있고 글씨를 쓴 사람의 성별, 성격, 나이, 건강, 기분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얼굴과 목소리는 선천적이지만, 글씨는 후천적이다.

미국의 초등학교에는 필기체 쓰기가 부활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필기체 여름 캠프를 열었는데 부모와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복사기, 컴퓨터, 스마트폰 등 손 글씨 대체 수단 때문에, 사라져 가는 육필(肉筆)의 기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필기체 캠프가 영국과 미국에서 계속 생겨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에는 명필이란 개념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예쁜 글씨를 쓰기 위해 교습생이 모여들 정도다. 글씨를 예쁘게 쓰고 싶은 것도 사람이 갖고 싶은 욕망이다.

가정이나 사무실 등의 실내 벽면에 명필로 경구(警句)를 쓴 족자가 있으면 저절로 시선이 끌린다. 그것이 한문으로 된 일필휘지(一筆揮之)일 때는 비록 모르는 글이라도 더 모양이 난다. 그러나 한문과 붓글씨가 점점 사라져 가는 오늘날에는 이것을 대체할 명필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있다. 이것이 말해 주듯이 옛날에는 글씨 하나만으로 유명하게 된 사람도 많다. 그만큼 글씨를 잘 쓰는 것이 중요시되었다.

조선 시대 최고의 명필을 꼽는다면 한석봉이다. 어머니의 떡 썰기와 한석봉의 글씨 쓰기 솜씨를 비교한 일화로 유명하다. 어머니와의 시합에서 패배한 석봉은 그렇게도 보고 싶던 어머니와 하룻밤도 보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다시 스승에게 돌아간다. 또다시 글씨쓰기에 몰두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필가가 된다. 그는 해서, 행서, 초서체 모두 뛰어난 솜씨를 보였고, 독특한 글씨체를 만들어 명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쳤다. 선조 임금은 한석봉이 쓴 글씨를 항상 벽에 걸어두고 감상했으며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려 왔던 명나라의 어느 장군은 석봉에게 특별히 부탁해 그의 글을 가져갔다고 한다.

우리 역사상 시, 서, 화에 고루 이름을 떨친 학자를 꼽으면 김정희다. 그중에서 그는 추사체의 독특한 글씨체를 완성한 인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백이 뛰어나서 이름이 알려졌다.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서 조맹부, 소동파, 안진경 등의 여러 서체를 익혔다. 이들의 글을 바탕으로 독특한 글을 완성한 것이 추사체다. 이것은 말년에 그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완성되었다. 그는 10개의 벼루 밑을 뚫고, 1000자루의 붓을 망가뜨리면서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모두가 노력의 결실이다.

중국의 대표적 서예가로서는 왕희지가 있다. 그는 해서, 행서,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하여 서예의 예술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중국에서는 왕희지가 쓴 붓글씨를 가진 사람이 금, 은, 보화를 가진 것보다 더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또 중국의 구양순은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겨도 붓글씨로 본인의 결점을 덮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상은 글씨를 잘 써서 유명하게 된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는 옛날과 같이 어려운 한자도 아니고, 쓰기 까다로운 붓글씨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쓰는 펜글씨를 보고 글이 날아갈 듯이 비뚤비뚤하면 속이 상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글씨만 잘 쓰면 되는 세상도 아니다. 문제는 학교 교육이 글씨쓰기에 너무 소홀한 경향이 있다. 예쁜 글씨쓰기는 물론 필순 지도에도 너무 소홀한 느낌이 든다. 가정교육도 문제다. 자녀의 글씨가 바르지 못하면 부모가 바로 잡아 주어도 된다. 6학년이 되어도 필순조차 맞지 않게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필순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예쁜 글씨가 가능하나.

시대에 따라 아무리 타이핑이나 이모티콘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서명, 간단한 메모, 전화를 받을 때, 회의 중 등에서 손 글씨로 기록을 남겨야 할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손 글씨는 뇌와 주요 능력이 발달하고 정보 습득 능력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직접 손으로 쓸 때 더 많은 정보가 습득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때 예쁜 글씨로 바르게 쓴 글은 읽기도 좋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듯이 글씨는 자신의 얼굴이다. 심정필정(心正筆正)이란 말이 있듯이 글씨는 자신의 인격이다. 연필이나 잉크로 예쁘게 쓴 글씨는 읽고 싶어지고 쓴 내용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간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이 좋은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는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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