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2019년 함안문화원 회원 문화유적지 답사

겨레의 함성, 그 현장을 가다

김양자(본지 문화담당 기자)

 

함안문화원회원들이 김동균 원장님의 인도로 독립을 위하여 겨레의 함성이 폭발한 현장 천안의 병천 아우내 장터와 유관순기념관.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가을날의 차가운 바람보다 더 세차게 휘몰아 감돌며 전국민의 몸과 마음을 일치시킨 겨레의 함성은 일제식민통치에 저항하여 일어난 우리 겨레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스런 일, 국가의 수치)는 권욕에 물든 인물이 매국행위를 한 행위로써 한일합방이 강제로 자행된 일을 말한다. 그 이후 백의의 민족이었던 순박한 민족이 당한 수모와 고초는 강제징용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천추의 한이 되어버린 위안부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었다. 36년의 고통은 말과 글을 잃어버리게 하는 수준을 넘어 한민족의 기틀을 흔들어 버렸다. 민초들의 의기투합은 독립의 불씨가 되었고 독립을 위하여 농민과 노동자, 여성과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저변이 확대되어 간다. 남녀노소의 단결은 계층을 불문하고 대중적이고 민중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민중이 무엇인가,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민중이다.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민중’ 쉽고 간단한 단어이지만 민중이라는 이름이 있어 분연히 일어날 수 있었고 역사의 틀의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 민중 속에 유관순열사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한 유관순열사의 모습을 보고 학업을 이어가고 이화학당으로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은 미국선교사들이었다. 계몽과 여성지위향상, 만세운동과 학생시위참가로 체포되기도 한다.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그로 인하여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내려와 장날을 이용해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한다.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에 의거한 만세운동이지만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한다. 그러나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독립만세운동이었다. 3.15정신은 자유와 평화를 지향한 신분고하를 막론한 민중의 독립운동이다. 독립투사들이 당했던 고난의 시간이 지금 우리의 안위와 평와와 정의의 발판이 되었다고 여긴다면 자유와 정의, 애국과 애족, 애민정신을 키우고 간직하고 물려주어야 한다.

한국인이 그 누구의 억압에 의하여 굴복하며 살아가는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의 기자는 세계에 알렸고,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고발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영국데일리 메일지의 특파원은 한국으로 건너와 취재를 하고 알렸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한국 독립운동 정의의 결정체이며, 불가능을 알면서도 실천하고 최후에 승리를 예고하고, 학생들의 순박하고 순결한 광명정대한 거사가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어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중국의 역사학자가 말하기도 했다.

100년의 시간이 흐르며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 새로운 자각을 일깨워 주는 문화유적지 답사를 통하여 나라사랑의 아름다움과 대한민국국민이라면 일제의 만행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각인하는 시간이었다. 겨레의 함성은 오늘도 여전하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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