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채미정(采薇亭), 곧은 절개의 숨결을 찾아서

이유라(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

 

  ▶ 이유라

함안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 중에는 충절의 선비정신을 보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1420~1489)가 있다. 그는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고 단종(端宗)에 대한 절의를 지킨 여섯 명의 신하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조려는 1453년 진사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세조가 군림하는 조정에 있을 수 없다 하여 1455년 고향 함안으로 돌아와 다시는 과거를 보지 않고 은거와 독서로 여생을 마쳤다. 이 같은 그의 굳은 뜻과 충성스러운 절개가 역대로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함안의 정기(精氣)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려는 1698년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된 후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고, 1706년 단종의 선위에 뜻을 함께한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와 함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 되었다. 1791년에는 정조(正祖)의 명으로 편찬된 단종과 관련된 사적이 담긴 《장릉사보(莊陵史補)》에 열전으로 실리기도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조려의 행적을 청절(淸節)의 표상인 중국 은나라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에 견주었다. 이들은 고죽국의 왕자들로 주나라 무왕(武王)에 맞서 절의를 지키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고사를 좇아 조려가 살았던 서산(西山)을 백이산(伯夷山)이라고 하고 그 옆에 있는 봉우리를 숙제봉(叔齊峰)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조려의 절의를 본받고자 그의 정신을 기념하여 새겨둔 곳이 또 있다. 바로 채미정(采薇亭)이다. 현재 경남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16에 소재한다. 채미정은 조려가 배향된 서산서원의 강당 동쪽 담장 너머에 위치하는 정자이다. 채미는 캐다는 뜻의 채(采), 백이·숙제가 신념 굽히지 않고 산속에서 죽음으로 버틸 때 먹었던 고사리인 미(薇)가 합쳐진 말이다. 채미정은 1735년에 세워졌다. 조려의 9대손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의 기문에 따르면 조려가 남긴 〈구일등고(九日登高)〉라는 시가 백이·숙제가 지조를 지키며 울부짖어 부른 노래 채미가(采薇歌)와 견주어 일맥상통하는 뜻이 보인다 하여 붙인 것이라 한다. 정자의 이름에 이어 그 동쪽에 있는 청풍대(淸風臺)와 그 북쪽에 있는 고마(叩馬)바위 역시 강직한 선비의 절개를 의미하는 말로 명명한 것이다.

조려의 충절 정신은 정자와 누대의 이름으로 되새겨지기 전에 앞서, 누구보다 뜻을 함께한 벗들이 이해하고 인정해주었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남긴 시문에서 그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김시습의 문집에는 여항(餘杭)으로 가는 벗을 보내며 지은 송별시가 있다. 여항은 함안의 진산(鎭山)으로, 김시습이 전송한 벗이 바로 조려이다. 이 시는 두 사람의 문집에 모두 실려 있다. 다음은 총 5수 중 제3수이다.

 

山中有女蘿, 산속의 여라넝쿨은

托根千歲松.천 년 묵은 소나무에 뿌리내리고

洞裏有孤雲, 골짝의 외론 구름은

必繞飛天龍.필시 하늘로 비상하는 용을 감싸리라

至人愛其友, 덕이 지극한 사람은 그 벗을 사랑하니

上下相追蹤. 위로 아래로 모두가 좇으려 하겠지만

愚人志自滿,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교만한 뜻 품으니

孑然誰與從. 외롭고 쓸쓸해 누가 함께 따르겠는가.

弟兄惠而好, 형제들을 사랑하고 아껴서

携手言同車. 손잡고 함께 타자고 말하게나.

歸歟復歸歟,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리라,

言歸歸大初.돌아간다는 것은 태초로 돌아감이네.

- 김시습(金時習)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 권6, 『여항으로 가는 벗을 전송하며(送人之餘航)五首」 제3수.

  

 

이 시가 지어진 정확한 시기는 추정할 수 없다. 어계 문집에 김시습과 관련한 시문이 이 작품이 유일하여 그 외의 정황을 포착하기는 어렵다. 다만 5수 전체의 내용으로 보아 1455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왕위찬탈이 일어난 후에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세상에 뜻을 두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 해에 쓴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조려는 과업(科業)에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고 김시습은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첫 번째 구의 여라(女蘿)는 원래 옛날에 은자(隱者)들이 이것으로 옷을 지어 입었던 데서 인격이 고결한 고사(高士)의 처소를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조려의 고향 함안을 가리킨다. 골짝의 고운(孤雲) 역시 조려가 지조를 지키러 향하는 공간인 함안 땅을 의미한다. 고아한 소나무와 하늘에 비상하는 용에 비유하여 조려의 절개와 의지에 찬사를 보낸 시구이다. 지인(至人)은 도덕적 수양이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4구에서 6구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 우인과 비교하여, 주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친구 조려에 대한 우의(友誼)의 정을 내비친 것이다. 제 9,10구는 『시경(詩經)』 「패풍(邶風) 북풍(北風)」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이 시는 국가의 위란(危亂)에 아끼는 사람과 함께 난리를 피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세상에 은둔하되 근심이 없는, 같은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자는 김시습의 다짐이자 조려의 행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의리로써 인정할 수 없는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나 지조를 지키려 한 조려의 낙향과 은거의 삶을 칭찬하며 그의 절개를 응원하는 벗의 바람이 담긴 작품이다.

후대 조선의 문인들은 유람 중에 함안 부근을 지나거나 생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서산서원을 직접 찾았을 때, 곁에 있는 채미정에 머물러 조려를 비롯한 선조들의 곧은 절개의 숨결을 느꼈다. 이황(李滉)의 제자로서 평생 성리학에 몰두하여 높은 경지를 이룬 18세기 문인 안명하(安命夏, 1682~1752)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西山崷崒首陽依, 서산 우뚝한데 수양산에 의탁하니

何獨夷齊詠采薇. 어찌 백이 숙제만이 채미곡 읊었으리오

百世淸風吹不歇, 청풍은 백세토록 불어 그치지 않아

東民竪髮仰餘輝. 백성들 머리털 쭈뼛해져 남은 광휘 우러러보네.

- 안명하(安命夏), 『송와집(松窩集)』 권2, 「서산서원과 채미정을 지나며(過西山書院采薇亭)」

 

채미정이 건립된 지 얼마 안 된 때에 안명하가 직접 이곳을 지나며 지은 것으로 보인다. 서원과 정자의 이름을 넣은 짧은 절구 시이다. 중국에 백이·숙제가 있다면 조선에는 조려가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넘친다. 마지막 구에 우리 백성들이 선인이 남긴 은덕에 정신을 깨우치고 밝은 빛과 같이 존앙한다고 하여 추모의 정을 가득 담고 있다.

1782(정조 6)년 조려는 정절(貞節)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청렴결백하게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올곧게 지킨다(淸白自守曰貞, 好廉自克曰節)는 뜻이다. 다른 글자도 아닌 이 같은 자의(字意)로 시호를 내린 것은 그의 행적이 보인 위대함을 기리고 후대에도 그의 뜻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현재 정자에 새겨진 “百世淸風”이라는 글씨에서도 같은 뜻을 읽을 수 있다. 선조의 의지를 본받아 그의 후손 가운데는 조종도(趙宗道), 조임도(趙任道), 조영석(趙榮祏) 등 많은 걸출한 인사들이 배출되었다.

채미정은 조려 사후 250년경에 지어졌다. 비록 그가 생전에 실제로 머물렀던 공간은 아니지만 그가 지조의 뜻을 변치 않으며 거닐던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조려는 시 〈중구일에 높은 곳에 올라(九日登高)〉에서 중양절(重陽節, 음력 9월 9일의 세시 명절)에 높은 언덕에 올라 서산의 가을 풍경을 만끽하면서도 시절을 아파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그 소회를 담았다. 하늘은 높고 맑은 바람이 부는 날 채미정에 올라 청풍대를 마주하고 멀리 백이산을 바라보며 조려의 마음, 조려의 절개를 제대로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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