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14. 금강산 쑥밭골의 신기한 이야기

금강산의 온정골 마을이어요.

이 마을에 조갑지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의좋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 이웃 사람들은 오순도순 살았어요. 이 산골 마을에 재미있는 풍습이 있었어요.

3월 3일 삼짇날, 9월 9일 중구날에 마을 사람들이 사당에 모여 금강산 산신령에게 제사를 올리고, 그 음식으로 잔치를 하는 풍습이 있었어요. 삼짇날에는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니, 일 년 농사를 잘 되게 해달라고 금강산 산신령에게 빌고, 중구날에는 일 년 농사를 잘 짓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금상산 산신령에게 제사를 모시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이 제삿날이 되면 금강산 어느 골짜기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예쁜 처녀가 와서 마을 사람들이 제사 차리는 일을 도와주었어요. 해마다 찾아와서 제사를 도와주니 그 처녀는 이제 마을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이웃 사람처럼 지냈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 한 구석 그 처녀에 대해서 수수께기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어요.

“어디에 살며 누구네 딸일까?”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처녀가 처음 마을에 왔을 적에 18 살의 어린 처녀였어요. 벌써 10년째나 되었는데도 10년 전처럼 나이가 들지 않고 꼭 같았어요. 그러자 사람들 중에는 이상한 상상까지 했어요.

“저 처녀가 혹시 백년 묵은 여우가 둔갑을 한 것이 아닐까!”

마을 사람들 중에 그런 의혹을 가지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일이 너무도 신기해서 마을의 한 노인이 처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얘야, 너는 어디에 사는 처녀인데, 해마다 빠지지 않고 마을의 동제 일을 도와주고 있느냐?”

처녀는 바알간 앵두빛 볼을 붉히면서 수줍은 듯 말했어요.

“고개 너머 삼선암 작은 암자에 사는 월명수좌 올시다.”

“아! 그래. 빼어난 산수가 있는 만물상 위의 삼선암이라 말이지. 그 아름다운 곳에서 이곳까지 오다니 고맙다. 복 받을 일을 하는구나.”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옵니다. 제가 사는 삼선암 암자에 한 번 놀러 오세요.”

마을 노인 몇몇이 그 처녀의 말에 사양도 하지 않고 단박에 승낙을 하며 되물었어요.

“으응? 그래도 네가 사는 곳에 가도 되겠니?” “바쁘시지 않으시면 날씨가 따뜻한 5월 단오날에 제가 사는 곳으로 오시면 반갑게 맞겠습니다.”

평소 그 처녀에게 의심을 잔뜩 품고 있던 노인들 중에 한 노인이 처녀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어요.

“얘야,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있다. 너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얼굴이 하나 변하지 않았구나. 정말 그대로이다. 너와 함께 자란 우리 마을 처녀들은 이제 제법 나이가 든 티가 나는 것 같은데 말이야.”

“맞아, 정말 그게 신기하단 말이야.”

그때 처녀가 볼을 붉히며 말했어요.

“삼선암 경치가 좋고, 그곳에 평화스러워 그렇겠지요. 그날 제가 사는 곳에 오시면 알게 되어요.”

마을 노인 몇몇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말을 믿지 않고 혹시라도 ‘백년 묵은 여우‘의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그러나 대개의 마을 노인들은 그날부터 5월 단오날을 기다렸어요.

드디어 단오날이 되었어요. 단오날 마을 노인들은 처녀가 산다는 금강산의 삼선암으로 가기 위해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 모였어요. 그 길이 너무 높고 험하기 때문에 노인들 중에서 건강이 좋은 다섯 분만 가기로 했어요. 평소에 처녀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던 노인들도 망설이다가 한 사람만 따라갔어요.

“혹여, 처녀가 백년 묵은 여우라면 따라가서 홀려 죽으면 어쩌지?”

다섯 명이 노인들이 그 처녀가 초청한 삼선암으로 가기로 하고 험한 산길을 걸어 올라갔어요. 노인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온정령 고개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른 쪽으로 펼쳐지는 만물상의 경치가 기가 막히게 좋았어요. 노인들이 황홀한 경치에 정신을 홀려 한 마디씩 했어요.

“와! 여기가 그 유명한 만물상이구나. 신선들, 선녀들이나 사는 곳이지, 우리 속세 사람들은 살 곳이 아니구나.”

“그려, 맞아 신선들이나 사는 곳이구먼. 그 처녀가 나이가 들지 않고 항상 젊어 사는 이유를 알겠다.”

“나, 여기 오래 살고 싶어.”

그 노인네들이 만물상으로 굽어 도는 산마루에 도착했어요. 삼선암, 귀면암, 독선암 등이 차례로 그 신기한 모습을 드러내며 눈앞으로 다가왔어요.

노인네들이 그 장엄한 만물상 경치에 혼을 빼앗겨 걸음을 멈추고 어찔할 바를 모를 즈음, 마을에 왔던 그 처녀가 방긋 웃으며 마중을 나왔어요.

“아휴, 그 먼 길을 오시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마을 노인네들은 그 처녀가 너무 고마웠어요. 노인들은 처녀의 손을 잡고 반가워서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하고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때였어요. 처녀가 손을 흔들며 암자 쪽으로 신호를 보내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하얀 화강암 바위 사이에 제비집처럼 은신한 암자에서 아릿다운 처녀들이 날개옷 같은 하얀 옷을 입고 나비처럼 가볍게 노인네들을 향하여 다가왔어요. 그 처녀들이 노인네들 가까이 오자, 그 주변에는 아주 상쾌한 기분을 주는 향수가 안개처럼 퍼져 노인네들의 옷이며 코를 적시는 것 같았어요. 노인네들을 그 황홀할 기분에 싸여 꿈속처럼 처녀들을 따라 암자로 들어갔어요.

노인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이 그 감동에 숨을 헐떡거리며 옆 옆에 노인에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혹시 우리가 백년 묵은 여우에게 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노인들은 그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 향긋한 향수에 이끌려 처녀들의 뒤를 따라 갔어요.

처녀들은 노인네들을 작은 암자로 모셨어요. 그 암자는 기와집으로 된 삼선암이었어요. 암자가 하얀 화강암 바위 사이에 간신히 기댄 것처럼 지은 것이었어요. 그 암자는 기묘하고 정교한 조각과 은근하면서도 화려한 단청으로 꾸며져 있고, 작은 바위로 둘러싸인 정원에는 보기 드문 꽃들이 만발했어요. 천년을 산다는 하얀 학이 한 마리 날개를 접고 앉아 정원에 졸고 있었어요.

처녀들이 노인네들을 안내를 극진히 했어요. 처녀들은 노인네들을 암자 뒤에 있는 별당으로 조심스럽게 모셔 가서 앞이 탁 트인 마루에 앉게 했어요.

“와, 만물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구나. 천하의 절경이 펼쳐지는구나. 이런 곳에 살면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것 같구나. ”

“그러겠다. 처녀가 늙지 않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잠시 후, 별당에는 큰 상이 차려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지가지 산해진미의 음식들을 처녀들이 날라 왔어요.

“와! 우리 마을에서는 평생 보지도 못한 음식이다. 이렇게 귀한 음식을 대접 받다니, 정말 꿈만 같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을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올걸 그랬구나.”

노인네들은 먹음직스런 음식이 가득 차려진 넓은 판 주변으로 둘러앉았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처녀들이 독특한 향기가 나는 술병과 맛있는 안주를 들고 들어와 노인네들 앞 판위에 놓았어요.

처녀들이 나긋나긋한 말씨로 노인네들 앞에 앉아서 술잔을 올리고 그 잔에다 향기 나는 술을 가득 부었어요.

노인네들은 처녀들이 부어주는 술을 마시고 귀한 안주를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처녀들이 부어주는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던 노인네들은 술에 듬뿍 취했어요.

어느 덧 해가 기우는 저녁이 되었어요. 저녁 노을이 만물상을 붉게 물들이자, 봉우리들, 바위들 그리고 초목들이 아슴한 꿈속의 경치처럼 아른거렸어요.

술이 거나하게 취한 노인네들은 이곳을 떠나기 싫었어요. 맛있는 음식, 향기 나는 술 그리고 예쁜 처녀들이 시중을 들어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았어요. 거기다 눈만 뜨면 꿈길 같은 만물상의 아늑한 경치가 흐르는 곳이 너무도 좋았어요.

어느 덧 노인네들이 이렇게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 향기는 술을 마시며 사흘을 보내었어요. 노인네들이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했어요.

하얀 날개옷을 입은 처녀들이 만물상 고개 위에까지 따라 나오며 이별의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노인네들은 그런 처녀들을 향하여 아쉬운 듯이 자꾸 뒤돌아보았어요.

사흘 동안을 삼선암에서 지낸 노인네들이 마을로 돌아와 보니 어리둥절했어요. 마을길로 들어오는 길이 허물어져 있고,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노인네들은 도저히 자기네 마을 같지 않아 서로 얘기를 나누었어요.

“이상하다. 우리 마을 뒷산이 분명 맞는데 마을에 집이 한 채도 없네?”

“우리 마을 터가 분명 맞아. 그런데 집이 한 채도 없고 쑥들만 무성하게 나 있네. 마을이 온통 쑥밭이 되었네”

그들이 마을 터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데, 그 중 한 노인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어요.

“저기 산 아래 언덕에 마을이 보이네. 저리로 가보세.”

노인네들이 그 마을 입구에 이르자, 노인네들보다 나이가 제법 위인 마을 노인이 정자나무 아래에서 지팡이를 짚고 그들을 맞이했어요.

노인네들이 그 마을 노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어르신, 저 쪽에 있던 마을이 어떻게 하여 여기로 집을 옮겼습니까?”

“글쎄요. 올해 내 나이 아흔아흔 살이오. 내가 마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확하게 210년 전, 동네 노인네들 다섯 사람이 삼선암으로 놀러 갔는데 그렇게 떠난 후, 아무리 기다려도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여기까지 말한 마을 노인을 자기 앞에 서 있는 다섯 노인을 이모저모 살펴보며 말을 이었어요.

“저의 증조부 되시는 분도 그때 가셨는데 오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분들을 기다리다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때, 삼선암에서 내려온 한 노인이 무언가 짚이는 게 있어 마을 노인에게 물었어요.

“여보시오. 어르신 죄송하지만 증조부 이름이 어찌 되오? ”

마을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어렵게 말을 했어요.

“왜 그러시오. 남의 증조부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시려고 그러오. 실례가 아니오?”

“어르신의 연세가 저보다는 더 되시나보군요. 죄송하지만 증조부의 이름을 좀 알 수 있을까요?.”

그제야, 아흔아흔 살 되는 노인이 손을 바르르 떨며 지팡이를 잡고 바로 서서 말했어요.

“우리 증조부 함자는 <만>자 <구>자라고 쓰지요. ”

삼선암에서 내려운 노인이 <만구>란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 이런 일이있나? 만구는 바로 내 이름인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삼선암에서 내려온 모든 노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얼굴색이 창백해졌어요. 삼선암에서 내려온 노인이 마을 노인에게 다시 말했어요. 그는 자신의 아들 이름을 그 마을 노인에게 물었어요.

“그럼, 조부 이름이 ‘승제’ 인가요?”

그러자 아흔아흔아흔 살 된 마을 노인이 벌컥 화를 내며 노인에게 달려들 듯 꾸짖으며 말했어요.

“이봐요. 나이가 내보다 제법 젊은 사람이 우리 조부님의 함자를 함부로 불러. 버르장머리 없게.”

아흔아흔 살 먹은 노인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들고 있는 지팡이를 휘둘렀어요.

삼선암에서 내려온 노인네들은 차츰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것 같았어요. 신선들이 사는 삼선암의 사흘이 이곳 마을에서는 210년이나 흘렀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었어요.

삼선암에서 내려온 노인네들은 아흔아흔 살 먹은 마을 노인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삼선암에서 보낸 신선의 시간 사흘을 생각하고 서로 눈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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