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10. 눈꽃바위 위에 웅크린 한 마리 호랑이

금강산 눈꽃바위 골이어요.

그곳은 삐죽삐죽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친 것 같이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였어요. 그 바위 높이가 100 여 m 나 되는 바위들이 길게 둘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는 바위 골짜기였어요.

바위가 그렇게 길게 둘러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그 바위의 색깔이 히끗히끗한 색을 나타내어 금강산에서는 보기 드문 경치였어요. 더구나 병풍바위 골짜기에 달이 밝으면 그 바위들이 마치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신기한 세상으로 변했어요. 그래서 그곳을 지나 간 시인들은 그 골짜기를 ‘눈꽃바위’ 골짜기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한 젊은 시인이 금강산의 눈꽃바위의 소문을 듣고 시를 읊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눈꽃바위를 본 젊은 시인은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높은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저절로 시 구절이 나오고 그곳이 너무도 성스러운 곳처럼 느껴졌어요.

“아, 정말 소문대로구나. 이곳은 사람들이 살 곳이 아니고 신선들이 모여 사는 곳이구나.”

시인은 바위와 맑은 공기, 물소리, 바람소리에 마음을 열고 시를 읊었어요. 젊은 시인의 낭랑한 목소리가 눈꽃바위 골자기에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어요.

젊은 시인이 오똑한 바위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시를 읊는 그 모습이 마치 시선처럼 보였어요. 그 젊은 시인은 금강산 눈꽃바위에 도취해 있어서 누가 가까이 가도 전혀 모르고 부처나 신선처럼 초연한 그런 자세로 앉아 있었어요.

한편 그런 금강산에 아름다음과 평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눈꽃바위 옆, 문주봉 굴 안에서 숫범 한 마리가 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어요.

“으-아! 어디 배가 출출한데 사냥감이 없을까?”

무서운 숫범은 붉은 입을 쩌억쩌억 몇 번이나 벌리고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긴 기지개를 켜고 굴 밖으로 나왔어요.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돌아보더니, 눈꽃바위에 범의 눈길이 화살처럼 꽂혔어요.

“그곳에는 물 먹으러 오는 산토기, 먹음직스런 통통한 노루, 간혹 사람들도 있기는 한데.... .”

범은 눈에 퍼런 불꽃을 이글거리고 입맛을 다시며 눈꽃바위 골자기로 몸을 어슬렁거리며 내려갔어요.

그러다 범은 눈꽃바위 골자기 오뚝한 바위 위에 있는 이상한 물체를 보았어요. 그 물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부처처럼 바위 위에 앉아 있었어요.

“그 참 이상하다. 눈꽃바위는 토기 노루들의 사냥터라서 작은 나무 돌 하나라도 예사로 보지 않는 곳인데 저 물체는 처음 보는 것인데.”

범은 자기 몸을 낮추어 숲 사이로 숨기고 발자국 소리도 죽여 그 물체 가까이 갔어요.

“어엇, 사람이 아닌가? ”

“그 참, 희안하다. 내가 금강산 골짜기, 이 눈꽃바위 골짜기에서 몇 십년을 사냥해 왔지만 저런 놈은 처음 보네.”

범은 발자국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사냥감에 대한 군침을 흘리며 오뚝한 바위 가까이 갔어요.

“녀석, 참 좋은 먹잇감이군. 잘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군.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시만 읊고 있군. 저렇게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참.... . ”

“죽은 놈은 아닌 것 같아. 저렇게 시를 읊고 있는 걸 보면. 죽은 놈은 먹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범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일부러 부시럭거리며 발자국 소리를 내었어요. 시인이 바위 위에서 움직이어야 사냥을 하지 저렇게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데 사냥할 재미가 없었어요.

범은 몇 번을 그렇게 발자국 소리, 나무 비비는 소리, 돌을 똑똑 하고 치는 소리를 내었지만 그 젊은 시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자식이, 움직이어야, 잡아먹든지 말든지 하지. 내-원-참. 금강산 골짜기에 몇 십 년을 살아도 이상한 놈을 다 보네.”

범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범의 가장 큰 무기인 ‘어흥!’ 하는 무서운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시인이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나 달아나려고 할 때, 범은 날카로운 앞 발톱으로 시인을 덮칠 생각을 했어요.

범은 시인이 있는 바위 바로 아래에까지 가서 시인을 쳐다보고 목을 가다듬었어요. 눈꽃바위 골짜기가 떠내려갈 정도로 무섭고 큰 소리를 내려고 범은 목에 힘을 모았어요. 호흡을 가다듬은 범은 하나, 둘 그 순간 범은 골자기가 떠날 갈 정도의 엄청난 큰 울음소리를 내었어요.

“어흥, 어흥, 어흥,”

범은 그 젊은 시인이 일어나 달아나려 하면 잽싸게 목덜미를 덮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발끝에 힘을 주며 만반의 자세를 취했어요.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 젊은 시인은 눈길하나 돌리지 않고 오똑한 바위 위에서 초연한 자세로 금강산에 대한 아름다운 시만 읊고 있었어요.

범은 정말 화가 났어요. 더 큰 소리로 어흥, 어흥 거리며 앞발로 오똑한 바위를 탁탁 쳤어요.

그러자, 젊은 시인이 범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주었어요. 시를 낭랑하게 읊던 젊은 시인의 그 눈길과 이글거리고 있는 무서운 범의 눈과 마주쳤어요.

그 시인의 눈은 호수처럼 맑게 범을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범의 눈과 시인이 눈이 얼마간 마주치자, 범이 먼저 눈길을 돌렸어요. 범은 모든 것을 각오하고 바로 오뚝한 바위 위로 힘차게 올라가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하늘에서 우렁우렁한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놈, 범아 너는 이 금강산의 ‘신령스런 짐승’이 아니냐?

네 놈은 언제 젊은 시인처럼 저렇게 금강산을 한번이라도 사랑해 본적이 있느냐?“

그 산신령의 목소리는 눈꽃바위 골짜기 안을 울리는 메아리처럼 우렁우렁 들렸어요.

그 순간 범이 산신령의 말에 ‘신령스런 짐승’이란 말을 듣고 고개를 떨구었어요. 또한 언제 한 번 저 젊은 시인처럼 금강산의 경치에 저렇게 도취되어 금강산을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라는 말에 범은 앞발을 파르르 떨고 그 곳 오똑한 바위 곁을 천천히 물러났어요.

“그렇구나. 나는 금강산의 ‘신령스런 짐승’이 아닌가? 그런 내가 언제 저 젊은 시인처럼 한번이라도 금강산을 지극히 사랑해 본적이 있는가?”

범은 앞다리를 파르르 떨며 쭈빗쭈빗한 눈꽃바위 위로 올라갔어요. 되도록 먼 곳에서 시인을 내려보고 싶었어요. 무척 험난한 눈꽃바위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범은 산신령의 그 우렁우렁한 말소리를 귀가에 깊이 담았어요. 100여 m나 되는 벼랑위에 올라온 범은 오뚝 바위를 내려다보니 그 아래쪽이 아찔했어요.

범은 젊은 시인이 앉아 있는 오똑바위를 내려다보았어요. 젊은 시인은 아직도 부처처럼 꼼작도 하지 않고 앉아서 금강산의 아름다운 시를 읊고 있었어요.

“아, 나는 무엇인가? 금강산의 ‘신령스런 짐승’인데, 한번도 금강산을 사랑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구나.”

범은 그 높은 눈꽃바위 벼랑 위에서 젊은 시인을 내려보며 깊은 반성을 했어요.

“내가 저 젊은 시인처럼 금강산을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까? ”

범은 벼랑 아래쪽의 젊은 시인처럼 금강산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았어요.

“내가 사람들처럼 시를 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

눈꽃바위 골짜기에 차츰 저녁이 찾아왔어요. 서녘하늘로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자, 히끗히끗하던 눈꽃바위가 불그스레하게 물이 들었어요.

“눈꽃바위가 온통 진달래꽃이 사태 난 것 같구나.”

“이런 아름다운 눈꽃바위를 위해 내가 할 일이 없구나.”

범은 그 아름다운 눈꽃바위를 물들인 노을을 보자, 이 세상에 내어나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산토끼, 노루, 사슴들이나 쫓느라고 노을의 아름다움을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하다가 이렇게 높은 벼랑에서 꽃물이 드는 눈꽃바위를 보자 눈물이 흘렀어요.

“아! 내가 금강산을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게 없구나.”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굵직한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범이 고민에 빠져 있다가 산신령의 소리를 듣자, 범의 귀에는 그 소리가 자기를 구원해 주는 말로 들렸어요.

“들어라. 산신령인 나도 그대를 사랑하노라. 자네도 이 금강산에서 오래 살았네. 이 금강산을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오늘 밤 그곳에서 찾아보게나.”

“산신령님, 제가 진실로 금강산을 사랑할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알았다. 오늘 밤 네가 서 있는 그곳 벼랑 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있으면 내일 새벽에 해가 비칠 쯤이면 네가 할 일을 알 것이다.”

산신령의 목소리가 아주 우렁차게 눈꽃바위 골짜기를 흔들었어요. 범은 그 산신령의 목소리가 ‘금강산 사랑’을 위해 고뇌하고 있는 자신의 갈 길을 가르쳐 주는 구원의 말씀처럼 들려 눈을 감고 깊이 새겨들었어요.

“내일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쯤, 그 답을 알 것이다.”

범위 귀에는 산신령의 그 말이 길게 여운을 깔았어요.

금강산 어두운 밤의 그림자가 차츰 도둑고양이 발걸음처럼 야금야금 깔려왔어요.

금강산 숲속에서 소쩍새가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했어요. 솔숲 향기를 싣고 흔들리며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가 오늘 밤에는 더욱 아름답고 서러웁기까지 했어요.

어디선가 들릴 듯 말 듯 한 산신령의 목소리 같은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에 듣는 소리는 모두 아름다운 것이니라.”

“마지막? 내가 오늘 밤에 죽는단 말인가? 내일 아침에 태양이 뜨면 나에게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범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둠이 내린 눈꽃바위 골짜기를 내려보다 우연히 하늘에 눈길이 갔어요.

“아, 까만 밤하늘에 저 반짝이는 수없이 많은 별들을 봐. 맑은 물에 은구술이 흘러가는 것 같군. 아! 손을 길게 벋어 올리면 저 별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구나. 언제부터 하늘에 저런 별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나?”

범은 그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빛을 보자, 눈시울이 적셔서 왔어요. 그러자, 또 어디선가 산신령의 목소리 같은 것이 바람결에 흔들렸어요.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아름답고 슬프게 보이는 것이란다.”

“그 참 이상하다. ”

범은 금강산 하늘에 수없이 흘러가는 별빛 물결을 보고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마치 그 시인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금강산에서 들리는 밤의 소리를 들었어요.

“조용한 물소리, 바람소리, 부엉이 소리, 소쩍새 소리.‘

범은 그 소리 하나 하나를 귀에 담다가 불현 듯이 밤하늘의 별들을 찬찬히 올려다보았어요.

“아. 별들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그 뒤에 구름 흘러가는 소리까지.”

‘구름 흘러가는 소리’ 그 말이 범의 입에서 나오자, 또 들릴 듯 말듯한 산신령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제 범, 네가 진실로 금강산을 사랑하는 ‘귀와 눈’을 가졌구나. 너에게 금강산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게 하여주마.”

범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거리며 눈꽃바위 끝에서 금강산을 내려다 보고만 있었어요

다음날 새벽이 되었어요.

둥근 해님이 동산에 둥실 떠올랐어요. 금강산 눈꽃바위를 비추던 해님이 이상해서 가까이 내려앉았어요.

“아 !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바위로 굳어져 눈꽃바위 위에 있구나. 어제까지도 없던 범 바위인데! ”

호랑이 바위는 금강산을 지키기라도 할 듯이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거리는 형상을 하고 눈꽃바위 위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혹시라도 누가 금강산을 헤치면 즉시 달려가려는 형상으로 말이에요.

조현술 논설위원

-군북면 출신

-교육학박사

-198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95년 현대시조 신인상 당선

-2008년 한국수필신인상 당선. 마산문인협회 회장

-경남아동문학회장, 진주해광학교장 역임

-마산시문화상, 경남도문화상 수상, 경남문인협회 회장 역임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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