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2. 금강산 백도라지 소녀

조현술

 

깊고 깊은 금강산 골짜기, 옹달샘 마을이에요.

그 마을 뒤 소나무 숲에는 솔바람 소리, 산새소리가 들렸고, 밤이면 수리부엉이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마을 앞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졸졸졸 흘렀어요. 아름다운 얘기가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나올 것만 같은 마을이어요.

이 마을에 머리카락을 예쁘게 따은 산골 처녀가 옹달샘 가에 앉아 있어요. 처녀는 옹달샘 속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고 있나 봐요. 뚫어지게 옹달샘 속을 들여다보던 처녀가 방실 웃었어요.

옹달샘 속의 처녀도 방실 웃었어요. 한참 동안을 그렇게 놀던 처녀는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처녀는 자주 이 옹달샘에 와서 옹달샘에 거울처럼 얼굴을 비춰보며 방실 웃곤 했어요. 옹달샘이 처녀에게 거울이었나 봐요.

이런 처녀의 모습을 멀리 갈참나무 숲에 숨어 유심히 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랫마을에 사는 ‘은목’이라는 총각이어요. 우연히 나무하러 가는 길에 옹달샘에서 처녀의 방실 웃는 모습을 보았어요.

‘아, 아름다운 처녀구나. 저 반달 같은 눈썹, 시원한 눈매, 백옥처럼 하얀 피부, 거기다 방실 웃는 모습은 한 송이 꽃 처럼 예뻐.’

그때부터 총각은 일이 없어도 윗마을 옹달샘 근처로 올라왔어요. 멀리서 처녀를 훔쳐보기 위해서이지요.

총각은 처녀가 앉아 있던 옹달샘 가에 앉았어요. 맑은 옹달샘 물에 처녀가 하는 것처럼 싱긋 웃어 보았어요. 잔잔한 물에 비치는 자신의 웃는 얼굴이 참 좋았어요.

“거울이 없으니까, 옹달샘에 와서 얼굴을 비춰보나 보다.”

은목 총각은 키가 크고 얼굴도 준수하게 생겨 처음 보는 사람도 가까이 하고 싶어했어요. 그런 은목 총각이 옹달샘 아가씨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옹달샘 아가씨는 금강산 윗마을에 살고, 어머니가 세 살 적에 돌아가셨으며, 아버지 밑에서 동냥젖으로 자라났다고 했어. 올해 열여섯이고. 이름은 라지라고 했지’

은목 총각은 윗마을 할머니들에게 몰래 탐지해 옹달샘 처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해서 나의 마음을 라지 처녀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을까?’

은목 총각은 라지 처녀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라지 처녀는 오늘도 옹달샘에 물 길러러 갈 준비를 했어요. 라지 처녀가 부엌에서 바가지, 동이 그리고 똬리를 챙기며 묘한 웃음을 머금었어요. 그리고 혼잣말처럼 속삭이었어요.

‘내가 옹달샘에 물을 긷는 동안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아랫마을 은목 총각이 참 좋아.’

라지 처녀는 그 은목 총각을 생각하고는 자기도 몰래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개지고, 가슴이 물레방아처럼 콩닥거렸어요.

한 시라도 빨리 옹달샘에 가고 싶어요. 멀리서 자기를 몰래 훔쳐보는 그 총각이 보고 싶어서이지요.

“아버지, 옹달샘에 물 길러러 가요.”

마루에서 짚신을 곱게 삼고 있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얼굴에 작은 웃음을 보였어요. 아버지가 라지 처녀에게 보이는 인사의 방법은 얼굴을 들고 작은 웃음을 띠우는 거래요.

바로 그때였어요.

“라지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랫마을에 사는 은목이라고 합니다.”

“어허, 자네가 어쩐 일로 우리 집에 다 오고. 반갑네, 이리오게.”

라지 아버지는 삼고 있던 짚신을 한 쪽으로 밀치고 은목 총각을 반가이 맞았어요.

부엌에 있던 라지는 숨이 딱 멎는 듯 했어요.

“아, 은목 총각이 우리 집에 어떻게 왔을까?”

라지 처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개지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옹달샘으로 휑하니 나가버렸어요.

옹달샘 가에 앉은 라지 처녀는 은목 총각 생각을 하면서 옹달샘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옹달샘 물에 라지 자신의 얼굴이 배시시 웃는 달처럼 비쳤어요. 웃는 자신의 얼굴 위에 은목 총각의 얼굴이 웃으며 겹쳐지자 깜짝 놀랐어요.

‘내가 너무 은목 총각 생각을 했더니, 그만 옹달샘에 그 얼굴이 비추네.’ ‘아, 은목 총각, 그 시원한 눈매, 짙은 눈썹, 커다란 키.’

‘지금쯤 아버지와 무슨 얘기를 나룰까?’

‘우리 집에 왜 왔을까?’

라지 처녀는 집에 돌아가기가 부끄러웠어요. 은목 총각과 얼굴을 마주친다고 생각하면 금세 얼굴이 붉어질 것 같아요. 괜히 숨이 가빠오며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어요.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라지 처녀는 물동이를 이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집으로 향했어요. 마을의 돌담을 돌아 집 가까이 오자, 집 안의 기척을 살폈어요.

자기 집 사리문 앞에까지 온 라지 처녀가 집안이 조용한 것을 느꼈어요. 마루에서 아버지가 혼자서 짚신을 삼고 있었어요.

“아버지, 물 길러 왔어요.”

“그러냐. 저녁이나 맛있게 지어라.”

아버지는 항상 하는 것처럼 고개를 들어 라지 처녀에게 작은 웃음을 보였어요.

라지는 부엌에 들어가서도 가슴이 콩콩 뛰었어요.

‘은목 총각이 혹시 우리 집 어느 곳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왜 한 마디 말씀도 없으실까?’

‘은목 총각이 왜 우리 집에 왔는지 말씀도 하실 만한데.’

라지 처녀는 아버지가 오늘따라 참 갑갑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알아서는 안 될 일로 왔는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계속 짚신만 삼았어요.

저녁밥을 먹고 자리를 물린 후였어요.

아버지가 평소에 없던 표정으로 라지의 손목을 다정하게 잡았어요. 눈시울에 눈물을 보이며 라지를 다독이듯 말했어요.

“라지야, 세 살에 엄마를 잃고 이 아비 밑에서 동냥젖으로 자란 너를 바라볼 적마다 속눈물이 났단다.”

아버지가 좀체 그런 말을 잘 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라지의 손목을 잡고 훌쩍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라지도 눈시울이 뜨거웠어요.

“라지야, 너도 이제 나이가 열여섯이니, 아버지 곁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라지는 아버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이상한 감정에 마음이 흔들렸어요.

“오늘 은목 총각과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보아하니 은목 총각이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더라.”

라지는 아버지의 그 말을 듣자, 묘한 감정에 휩싸여 자신을 다스릴 수 없었어요. 마음속에 응어리지고 있던 어떤 아픔들, 또 앞으로 다가올 묘한 감정이 울음으로 터져 나왔어요.

“아버지, 그런 것, 나 몰라요.”

라지는 자기 방으로 와서 이불 위에 엎드려 엉엉 울었어요. 어깨를 달삭이며 울었어요.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게 이상하게 울고 싶어.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두고 시집을 가다니. 나에게 동냥젖을 얻어 먹인 아버지이신데..... .”

라지의 울음소리는 아버지가 있는 마루에까지 들렸나 봐요. 아버지도 참을 수 없었든지 울먹이었어요.

다음 날은 라지가 옹달샘으로 일찍 나갔어요. 은목 청년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옹달샘에 얼굴을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나를 위해 우리 집에까지 온 은목 청년! 오늘도 저 멀리서 나를 몰래 지켜보겠지.”

바로 그때였어요.

“라지씨, 은목입니다.”

언제 왔는지 은목 청년이 라지의 등 뒤에서 커다란 물통을 메고 있었어요.

“어마마! 난 몰라.”

라지 처녀는 놀라서 달아나려 했어요.

그런 라지를 은목 청년이 커다란 어깨를 턱 버티고 막아서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라지 아가씨, 근 1년 동안이나 멀리서 지켜보았어요. 아버님께 저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몰라요. 몰라요, 난 그런 것 몰라요.”

“라지씨, 오늘부터 제가 이 물통으로 물을 라지 씨 부엌에까지 길어다 드리지요.”

라지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연신 가빠 왔어요.

두 사람은 옹달샘 가에서 서로 결혼을 굳게 약속한 것 같았어요.

 

금강산 마을에 5월이 되었어요.

요즘 들어 라지 처녀가 너무 예뻐졌어요. 피부도 고와지고, 치렁한 머리칼이 윤이 반들반들 나고 웃음도 한결 방실거렸어요. 성격도 아주 쾌활해졌어요.

그런 어느 날, 마을 원이 마을의 살림살이를 둘러보러 왔어요. 금강산 라지가 사는 옹달샘 골짜기에도 왔어요.

마을 아전들을 거느린 원님의 행차가 이 옹달샘 골짜기로 들어왔어요.

“하, 마을 아름답다. 그런데 저기 물을 길러 가는 처녀는 누구냐. 이리 불러라.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선녀 같군. 저 치렁한 머리칼도 그렇고.”

잠시 후, 다소곳한 모습으로 원님 앞에 꿇어앉은 처녀는 이 마을 라지였어요.

원님의 눈이 라지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어요.

가느다란 몸매에 하얀 피부만으로도 아름다웠어요. 반달 같은 눈썹에 시원한 눈매는 그림 같고요.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는 바알간 볼에서 작은 보조개 웃음으로 웃을 적에는 차마 가까이 가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원님은 얼이 빠진 사람처럼 라지를 내려다보다가 정신을 차려 라지를 보고 물었어요.

“너는 누구 집 여식이며 이름은 무엇인고?”

“ 예, 이 마을에 사는 <도>, <동>자 <수>자 아버지의 딸 ‘라지’ 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너무 예쁘고 예의도 바르구나. 이름이 ‘도라지’ 라 그것도 좋구나. 가서 네 일을 보거라.”

마을 원은 마을을 둘러보는 일을 끝내고 관가로 돌아왔어요.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었으나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어요. 오늘 낮에 옹달샘 골짜기에서 본 라지 처녀 얼굴이 한 송이 커다란 꽃처럼 방실거리며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았어요.

원님은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아침이 되자, 바쁘게 아전을 불렀어요.

“빨리 가서 라지 처녀를 데리고 오너라.”

얼마 후, 러지 처녀가 영문도 모르고 원님에게 불려왔어요.

“라지야,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지 않겠느냐?”

라지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했어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라지야, 이곳에 오면 너의 아버지도 편안하게 모시고 살 수 있어. 너에게는 값이 비싼 비단이며 금, 은, 보석으로 귀걸이, 목걸이도 해 준다.”

라지는 차츰 제 정신이 들었어요. 원님이 자기를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나를 자기의 첩으로 삼을 생각이구나.’

라지 처녀는 강하게 아주 단호하게 원님에게 또박또박 말했어요.

“원님, 저는 이미 약속한 남자가 있습니다. 절대로 원님의 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원님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차례나 라지를 꼬드기이었어요.

그럴수록 더욱 라지는 싸늘하게 원님의 청을 거절했어요.

원님도 화가 났나 봐요.

“여봐라, 저 라지를 옥에 가두고 밥을 굶겨라.”

그날부터 라지는 거의 매일 원님 앞에 불려 나와 고문을 당했어요. 그래도 라지가 원님의 말을 듣지 않자, 원님은 라지를 무서운 형틀에 손과 발을 묶게 하고 더 가혹한 고문을 했어요.

이제 라지도 지쳤어요. 그 아름답던 얼굴이 앙상한 뼈만 남았어요. 라지는 자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그날도 고문은 시작되었어요.

“원님, 제가 이제 더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죽는다면 제가 자주 가는 옹달샘 근처에 묻어주십시오.”

라지가 그 말을 남기고는 숨을 거두었어요.

원님도 더는 어쩔 수 없었어요.

“여봐라, 라지의 마지막 소원이니 그것은 들어주어라.”

라지의 숨진 소식을 듣고, 라지의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관가로 달려왔어요. 라지의 주검을 보고 울먹였어요. 사람들은 라지의 소원대로 라지를 옹달샘 근처의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어요.

며칠 뒤, 은목 총각이 이 소식을 듣고 울며불며 라지네 마을로 달려왔어요. 옹달샘 근처 양지바른 곳에 있는 라지의 무덤으로 갔어요.

무덤 앞에 선 은목 총각은 울먹이며 라지를 불렀어요. 금세라도 라지가 그 하얀 피부와 시원한 눈매로 방긋 웃으며 나올 것만 같았어요.

은목 총각은 그 아름다운 라지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어요.

매일 라지의 무덤가에 가서 살아 있는 라지에게 대하듯 얘기도 하였어요. 때론 라지가 좋아하던 과일, 떡도 가지고 갔어요. 어떤 때는 라지가 좋아하던 노래도 불러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라지의 무덤에서 하얀 꽃송이가 피어났어요. 여태보지 못한 너무도 청초하고 아름다운 꽃이었어요.

“아, 라지가 남긴 꽃이구나. ‘도라지꽃’라고 불러야지.”

은목 총각은 그 꽃을 잘 돌보아 가을에 까만 씨앗을 많이 받아 봉투에 넣었어요.

“내년 봄에 금강산 골짜기마다 뿌려야지.”

그 후, 금강산 골짜기에는 하얀 도라지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몇 년이 지나자 금강산 골짜기마다 하얀 도라지꽃이 피어났어요.

마을 사람들은 라지의 영혼을 아름답게 간직하기 위해 ‘백도라지꽃’이라 불렀어요. 꽃이 희다고 ‘백도라지꽃’라고 해요.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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