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1. 붓꽃과 화가 아저씨

조현술 논설위원

 

몇 년 전 금강산에 문학 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양지 쪽 언덕 잔디밭에 보라색 붓꽃이 소녀가 방긋 웃는 웃음으로 동화작가인 나를 꼭 잡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나는 소녀의 손에 이끌리듯 보랏빛 물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어요.

어느 금강산 계곡이어요.

푸른 옥을 갈아 흘러내려는 것 같은 맑은 물이 산계곡을 내려오고 있어요. 토기, 사슴 그리고 곰들이 이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몸을 씻고 있으니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한 곳이지요.

그 계곡 오른쪽 언덕에 화가 아저씨가 혼자 사는 초가 한 채가 그림처럼 있어요. 그 초가 뒤에는 한 마리 곰을 닮은 커다란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앞에는 맑은 옹달샘이 있어요. 옹달샘에 낮에는 해님이 방글방글 웃고 가며 밤에는 달님이 들여다보고 놀다가고 때로는 별들이 수없이 들여다보며 깔깔거리곤 했어요. 간혹 산노루, 산토끼도 목을 축이고 가는 샘이지요. 그 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세상의 이야기가 가득 고여 있어요.

화가 아저씨는 그 샘을 들여다보며 붓 한 자루를 들고 무슨 그림을 그릴까 생각에 잠겼어요. 그 붓은 이 우물에서 산 신령에게 받은 너무도 귀한 붓이어요.

화가 아저씨가 들고 있는 붓은 신기했어요.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 속의 동물들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물소리, 새소리까지 나며 심지어는 아름다운 산꽃을 그리면 그 꽃에서 향긋한 꽃내음이 바람결에 풍겨오기까지 했어요.

화가 아저씨는 옹달샘을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있다가 금강산 계곡 아랫마을 덕만이의 슬픈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덕만이가 몸이 아픈 뒤로 기력이 쇠하여 항상 우울해 있던데 그림을 한 장 그려 주어야지. 더구나 작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화가 아저씨는 즉시 방으로 들어가 화선지를 펴서 덕만이의 얼굴을 그렸어요. 슬픈 얼굴이 아니고 의욕이 왕성한 표정으로 무엇인가 부지런히 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그렸어요.

즐거운 표정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어서 우쭐 대는 그런 표정이었어요.

화가 아저씨가 덕만이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고 보니 흡사 덕만이가 깔깔거리며 벽에서 뛰어 나올 것 같았어요. 이에 만족한 화가 아저씨는 그 그림을 가지고 덕만이가 사는 금강산 아랫마을 쑥대밭골에 갔어요.

화가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덕만이 집을 찾았어요. 덕만이 어머니가 시름에 싸인 얼굴로 있다가 화가 아저씨를 보자 반갑게 맞았어요.

“화가 아저씨, 이렇게 누추한 곳에 어떻게 오셨어요. 누추하지만 방으로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아닙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강산 계곡에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우리들이 아닌가요. 그런데 덕만이는 어디 갔어요?”

“덕만이 녀석은 어디 아픈 곳도 없는데 저렇게 방에 웅크리고 앉아 끙끙 앓고만 있어요. 제 아비가 돌아가신 후 저렇게 방에서 끙끙거리만 하고 있어요. 이 어미가 어쩌면 좋아요?”

“그렇군요. 저도 덕만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합니다. 덕만이가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성도 바르고 얼마나 착한 아이였던가요? 덕만이 어머니, 덕만이에게 이 그림을 보여 주고 덕만이가 자는 방의 벽에 걸어 두라고 하세요.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화가 아저씨는 덕만이 어머니에게 그림이 들어있는 족자를 주고는 무슨 수수께끼 같은 신비스런 이야기를 남기고 가버렸어요. 덕만이 어머니는 화가 아저씨가 돌아간 후 고개를 갸웃둥거리다가 그림 족자를 덕만이가 생활하는 방 벽에 걸어두었어요.

정말 신기했어요. 그날 저녁부터 벽에 걸어둔 그림에서 덕만이 얼굴이 싱글싱글 웃기 시작하고, 웃음소리도 하하하, 허허허 들렸어요. 그와 동시에 참으로 신기한 일이 났어요. 어느새 덕만이가 그 그림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활발하게 뛰어 놀기 시작했어요.

이 덕만이의 이 신기한 소문이 마을에 퍼졌어요. 이 마을 저 마을 덕만이 집에 와서 덕만이의 변한 행동을 보고 모두가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그 화가 아저씨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아픈 사람들, 고민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슨 소원이 있는 사람들이 화가 아저씨를 찾아왔어요. 화가 아저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아픈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 주었어요. 다리가 아파서 걷지 못하는 사람도 그림 속의 사람이 걸으면 자신도 천천히 걷게 되었어요. 어떤 할머니는 눈이 어더워서 앞을 보지 못하다가 그 그림을 자주 보자 어느 새 눈이 환히 밝아오기까지 했어요. 다리를 절뚝거리던 할아버지는 그림을 벽에 붙여두자, 어느 새 다리가 나아 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화가 아저씨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려주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할머니가 헐레벌떡거리며 화가 아저씨를 찾아왔어요.

“화가 선생님, 큰일났어요. 우리 손주에게 그림을 그려주어서 아픈 상처가 났고 걸어 다니게 되었는데 눈이 보이지 않아요.”

“예? 그래요. 빨리 갑시다.” 화가 아저씨는 신기한 붓 한 자루만을 들고 숨을 식식거리며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어요. 화가 아저씨는 그 손주 방에 걸어둔 그림을 유심히 보았어요.

“아, 내가 실수를 했구나. 그림 속에서 아이의 눈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구나. ”

화가 아저씨는 붓을 들어 조심스럽게 그림 속의 아이 눈에 작은 점을 하나 찍었어요. 아이는 신기하게도 그날 오후부터 눈을 뜨게 되었어요.

이 소문이 마을에서 마을로 돌아 온 나라 안에 고루 퍼졌어요.

드디어 궁궐 속의 임금님 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임금님은 무척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욕심이 지르르 흐르는 미소를 흘리고는 신하에게 명령했어요.

“여봐라. 금강산 계곡에 쑥대밭골 윗마을 곰바위 아래, 초가에 사는 화가가 너무도 신기한 붓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것을 빨리 나에게 바치도록 하여라.”

임금님의 명령은 무서웠어요. 며칠이 지나지 않아 화가의 그 신기한 붓이 임금님에게 받쳐졌어요.

임금님은 그 붓을 요모조모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꿍꿍이 속 웃음을 짓더니 궁중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를 불렀어요. 임금님은 궁중 화가에게 성급하게 명령을 했어요.

“김 화가, 이 붓으로 나를 아주 행복하고 건강하게 그려라.”

“예, 폐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화가는 즉시 물감을 준비하여 임금님을 그리려했어요.

“임금님 그런데 이상합니다. 붓에 물감이 묻지 않습니다. 붓에 물감을 아무리 묻혀도 붓에 물감이 적셔지지가 않습니다.”

궁중의 화가는 수십 번을 붓에 물감 묻히는 일을 시도해 보았지만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임금님은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궁중에 있는 다른 화가를 불러서 시켜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임금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요.

“이것은 필시 금강산 계곡의 쑥대밭골 그 화가 녀석이 나를 속이려고 다른 붓을 보낸 것일 거야. 그 녀석을 즉시 잡아 오너라”

그 다음날, 임금님 앞에 굵어 앉은 금강산의 화가 아저씨는 임금님에게 호된 꾸중을 들었어요.

“이 놈,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짐에게 거짓말을 해. 당장 이 붓으로 내가 명령하는 그림을 그려라.”

임금님은 무엇을 생각하더니 음흉한 웃음을 머금고 굵직한 목소리로 명령했어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웃음이 저절로 나는 그런 그림을 그려라.”

임금님의 말을 듣자, 화가 아저씨는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임금님을 똑 바로 쳐다보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이미 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붓의 신비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 붓은 저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을 위하여 쓸 있도록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뭐라고? 이 무엄한 놈 보았나? 감히 누구 앞이라고?”

임금님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노발대발하며 화가 아저씨를 보고 자기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윽발질렀어요.

화가 아저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임금님 앞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임금님이 명령하는 대로 그림을 그려야만 했어요. 붓을 든 화가 아저씨는 끓어오르는 울분의 마음을 억누르고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화가의 붓이 움직일 적마다 임금님의 표정이 바꿔지기 시작하였어요. 화가 아저씨의 붓은 과일들, 이밥, 찰떡, 국수, 고기 등을 그렸어요. 맛있는 음식 냄새와 과일 향기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와 동시에 임금님과 주변에 있는 신하들이 입맛을 다시고 심지어는 트림을 하기까지 했어요.

화가 아저씨가 토끼, 노루, 사슴이 천장에서 거꾸로 걷는 모습으로 물을 마시고 장난을 치는 그림을 그리자, 주변에 보는 신하들은 웃음보를 터트렸어요. 더구나 임금님은 배를 움켜잡고 웃었어요.

화가 아저씨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붓을 하늘로 치켜들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하더니, 화선지에 붓을 대고 떨리는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황소가 풀을 잔뜩 뜯어 먹고 누워서 씩씩 잠을 자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는 그 그림을 임금님만 볼 수 있도록 임금님 가까이에 펴 놓았어요.

임금님이 그 그림을 보고 있더니 이내 하품을 하고 스르르 의자에 기댄 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어요. 그 모습을 본 화가 아저씨는 황소의 콧등에다 대고 붓을 몇 번 더 쿡쿡 눌렀어요. 그러자 임금님을 코를 드르렁 골며 더욱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어요.

화가는 조심스럽게 붓을 내려 그림 위에 던져 놓고 궁궐을 빠져나와버렸어요. 화가는 금강산에서도 아주 깊은 골짜기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어요.

한 편 궁궐에서는 큰 소동이 났어요. 임금님의 코 고는 소리가 더욱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임금님이 의자에 앉은 채 코를 골고 침을 흘리며 더욱 깊은 잠 속으로 빠지는 것이었어요.

신하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어요.

“그림 때문에 임금님이 잠에 빠졌으니 저 그림을 찢어버리자.”

‘안돼, 얼마나 소중한 그림인데 그림을 찢어.’

“그러면 임금님을 깨울 방법이 없지 않아.”

“맞아, 그 방법밖에 없어. 우리가 감히 임금님 몸에 손을 댈 수도 없고.”

신하들은 황소가 코를 골고 자는 그림을 떨리는 손으로 부욱 찢어버렸어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임금님이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드니 깊은 잠에서 깨었어요. 임금님은 잠에서 깨자마자, 찢어 논 그림을 보고 화를 벌켝 내었어요.

“어느 놈이 감희 저 소중한 그림을 찢어 놓았어”

신하들이 벌벌 떨며 그간의 일을 차종 치종 임금님에게 말했어요.

임금님은 한참 동안 신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는 분통을 터트렸어요. 당장 그 붓을 들더니 세 동간이나 분질러서는 임금님의 정원이 있는 창가 쪽으로 던져버렸어요.

그로부터 며칠 후, 그 붓이 던져진 곳에서 뽀족뽀족한 잔디 풀 속을 헤집고 붓촉을 닮은 보라색꽃이 예쁘게 피어났어요. 그 꽃이 흡사 붓 같았어요.

임금님이 우연이 이 꽃을 보고는 그 화가의 붓이 생각나 보는 꽃마다 손으로 으깨어 분질러버렸어요. 그럴수록 붓꽃은 더 많은 꽃으로 피어났어요. 드디어 궁궐 밖으로 꽃이 나가서 온 산과 들에 까지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말하는 붓꽃은 이렇게 해서 피어났어요.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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