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양신문

함안군 참전용사 회고록-33

조경문(1930년생) 지내시는곳 : 가야읍 삼기길

  ▶조경문

나는 고향에서 5대 이상 살고 있다. 함안종고 1회 졸업생이고 전쟁이 나던 해까지 학교를 다녔다. 그 당시 학교는 우리 학생들이 지키겠다고 했었다.

2년간 군생활을 했고 제대 후 22살에 결혼해 6남매를 두었다. 자식들은 모두 타지에서 살면서 자주 들린다. 현재 이곳에서 아내와 농사지으며 계속 거주하고 있다.

전쟁이 나자 열차를 타고 김해 가락으로 피난을 갔다. 그 곳에서 강제 동원되어 입대를 했다. 나는 군번이 두 개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군번, K123-XXXX, 카츄사 군번이다. 한국군 군번은 잊어버려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산에서 훈련을 받은후 동래에 있는 국민방위군에 배치받았다. 방위군은 썩어서 곧 해체됐다. 육군 보병으로 김해 가야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군번을 받았다. 얼마 후 흑인 병사가 와서 우리는 모두 유엔군에 편입됐다. 미3사단에 배속되어 새로운 군번을 받았다.

우리는 배를 타고 일본 벳부에 있는 미군 훈련소로 이송됐다.

지금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천막을 치고 두달 정도 미국식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 중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를 타고 원산으로 상륙했는데 도시는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육지에는 불이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만 있었다. 이동해 함흥에 도착했을 때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알았다. 미군은 일주일마다 종이에 기사를 작성해서 나눠주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계속 싸우면서 장진호 근처로 이동한 우리 부대는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부대가 철수할 때까지 남아서 지키다가 가장 늦게 철수를 했다. 흥남도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고 비료공장도 완전히 고철덩이가 되어 있었다. 거의 한 달 간 우리는 교전을 계속했다.

중공군과 미군은 각지에서 계속 전투를 하고 있었다. 민간인까지 철수가 끝나고 난 후 우리는 마지막에 철수했는데 그날이 1950년 12월 24일이었다. 배안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는데 미군들은 우리에게 보급품을 나눠주지 않았다. 인종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다시 경주를 거쳐 북쪽으로 진격했다. 남한산성 전투에서 중

공군과 싸우고 결국 남한산성을 회복한 후 서울로 입성했다. 서울 남산에 조금 머물렀다. 최전선이 위험하다는 소식에 우리는 철원삼각지에 투입됐다.

철원삼각지는 철원군과 김화군, 평강군을 일컫는다. 그 곳에서의 전투는 치열했고 전우들도 많이 전사했다. 우리는 다시 동두천까지 후퇴했다. 연천, 동두천에서 한참을 있었는데 중공군과 대결하다 철수해서 의정부까지 후퇴했다. 다시 북진을 했는데 백마고지가 있는 철원삼각지에 재배치돼 있다가 한국군 9사단과 교체하고는 포천으로 이동했다. 포탄을 들이부어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 중공군. 사실 중공군은 무기도 별로 없었는데 너무 수가 많아서 우리가 겁을 먹었다. 중공군은 아직 어린 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를 잡았는데 열일곱 살이라고 했다.

휴전회담이 진행됐다. 맥아더는 북진을 해서 중공군을 몰아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사임을 했다. 미국의 계획은 육지의 최단거리인 39도선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방사능대(라듐)를 만들고자 했다. 스탈린의 휴전 제의로 3년만에 휴전이 성립됐다. 그 당시에 휴전이 안 됐으면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국민들도 국론이 분열되어 휴전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계속 싸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솔직히 전쟁이 끝났으면 하고 바랬다.

동족 간에 싸워서는 안 되는데 압록강까지 북진을 해서 영토를 확보했다면 통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힘이 없는 민족이라 유엔군의 중재에 따라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흥남에서 철수할 무렵 발 씻고 자다가 걸린 동상 때문에 아직도 고생이 심하다. 겨울만 되면 발이 시리다. 전쟁터에서 사선을 몇 번이나 넘기며 고생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천행이라 생각된다. 국민모두가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라가 편안해야 가정도 편안하다. 지금이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고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피로써 지킨 나라를 정치인들이나 사회인들이 깨끗하고 능력껏 잘 살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꼭 통일이 되어야 한다. 요즘 뉴스를 보더라도 어른들이 많이 반성해야 한다.

더함안신문(theha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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